저는 고등학교 3학년이 된 자폐성 장애 아들을 둔 엄마입니다. 아이가 18개월 무렵에 처음 발달상의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안 이후로 저희 가정은 단 하루도 편한 날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35개월 무렵, 미국의 한 클리닉에서 아이가 정식으로 자폐 진단을 받았을 때의 충격과 실망은 이루 말 할수가 없었습니다. 그래도 조기 발견을 했고, 조기 치료를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기울였음에도 받아 든 결과였기 때문입니다.
충격은 저희 가정 전체를 사정없이 뒤흔들었고, 어떻게 그 폭풍속을 헤쳐 나왔는지 모르겠습니다. 한참 저희가 아이의 장애와 씨름하고 있을 때 한 미국인 친구가 저희 부부에게 이런 말을 했습니다. ' 우리 미국 가정들은 너희처럼 자폐아 자녀가 있는 경우 부부가 서로 심하게 다투다가 이혼하고 가정이 깨어지는 경우가 많은데, 너희 부부는 가정을 이렇게 잘 유지하고 있다니, 참 대단하다' 하지만 저희도 사실 그 무렵 부부싸움이 잦았고, 이혼 위기 까지 갈 법한 순간이 얼마나 많았는지 모릅니다. 저희 가정이 그나마 미국 가정들과 달랐던 것이 한가지 있다면 ' 무슨 일이 있어도 이혼은 절대 안된다!'고 이를 악물고 버틴 것 뿐이었습니다.
많은 부모들이 부모가 된다는 것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부모가 됩니다. 저희 가정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래도 평범한 보통 아이를 키우는 가정들은 주변에 다른 가정들을 보면서 영향을 받기도 하고, 어려움을 극복하는 지혜와 팁을 얻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저희 가정 주변에는 자녀의 장애를 모범적으로 극복하고 있는 샘플 가정이 전혀 없었고, 그러다보니 하나부터 열까지 혼란과 실수의 연속이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런 저희의 무지함과 어리석음을 무한한 인내와 은혜로 이끌어 오셨습니다. 아이의 장애가 있었기 때문에 고통스런 나날들도 많았지만, 저희 부부가 성숙해 질 수 있는 계기도 많았습니다. 아이의 장애 때문에 서로 원망하며 다툴 때도 있었지만, 오히려 서로를 더욱 의지하고 도와주려는 마음도 많아져서, 부부의 하나됨이 더욱 견고해지는 밑거름이 되기도 했습니다. 어쨌든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저희 가정은 여기까지 왔고, 저희 아이는 비록 아주 느리긴 하지만 생각보다 밝고 건강하게 잘 자라 주었습니다.
단혜향 선생님을 통해 가정의 힘을 만나고, 성경적인 가정의 질서와 부부 역할, 부모 역할을 배우면서, 우리 아이가 좀 더 어렸을 때, 빨리 이걸 깨달았다면 많은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었을텐데 아쉬운 마음이 듭니다. 하지만 아직 어린 둘째를 키우고 있는 이제라도 알게 되어서 참 감사하다는 생각이 더 많습니다. 아빠가 축복하는 자로서, 가정의 제사장으로서 중심을 잡고 섰을 때 아이가 엄청난 안정감을 누리고 모든 면에서 균형잡히게 성장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은 자폐아나, 평범한 자녀나 똑같습니다. 부부가 서로의 역할을 인정하고 존중해주는 관계 속에 기도로 한팀이 되면 가정의 많은 문제들을 함께 이겨나갈 수 있는 것도 자폐아 가정이나 평범한 가정이나 마찬가집니다. 각 가정마다 시간과 정도의 차이일 뿐 가정을 세우는 원리는 동일하기 때문입니다.
자폐아이를 키우다보면, 아이의 문제 행동을 교정하기 위해 부모가 어떻게든 개입을 해야 할 때가 수없이 많습니다. 그럴 때 부부가 서로의 방법이 마음이 들지 않아 잔소리를 하면 아이의 문제가 부부의 갈등으로 비약해서 어느 것도 해결이 안 됩니다. 그러나 아내가 스스로를 '돕는 베필'로 인식하고 가장으로서 남편의 역할을 세워주려고 노력하다보면, 아이 앞에서 아빠를 비난하는 말도 하지 않게 되고, 아빠도 가장으로서의 책임을 다하기 위해 더욱 노력하게 됩니다. 이렇게 가장의 역할, 아내의 역할이 말씀 속에서 질서를 잡으면 이전보다 아이를 야단 칠 일이 훨씬 줄어들고, 오히려 아이를 칭찬해 줄 일이 더 많이 생깁니다. 엄마, 아빠가 달라지고 성장하는 만큼 아이들도 달라지고 같이 성장하기 때문입니다.
자폐아이를 키우는 가정들도 아이를 위해 좋다는 것이면 다 해주고 싶어합니다. 아이가 조금이라도 호전될 수 있다면 치료와 교육을 위해 어떤 비용도 기꺼이 지불하려는 것 역시 일반 가정과 동일합니다. 하지만 그 모든 방법과 노력들이 효과를 거두기 위해서는 부부가 하나되어 서로를 지지하고, 존중해 주는 것이 먼저입니다. 남편은 아내를 (그리스도께서 몸된 교회를 돌보듯이) 아끼고 사랑하며, 아내는 남편을 (그리스도를 받들듯이) 존경하고 순종하는(엡 5:22-25) 원리는 자폐아 가정을 비롯해 모든 가정에 똑같이 적용됩니다.
자폐아 가정은 부모도 자폐아가 된다는 말이 있습니다. 다른 사람이 무슨 말을 해도 '우리 가정을 이해하지 못해서 하는 말이다'는 방어심리가 쉽게 작용하기 때문에 친척들과 심지어 부모와도 발길을 끊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부모나 친척, 주위 사람들이 걱정한다고 해 주는 말들이 상처가 되어서, 스스로 고립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자폐아 가정도 더 많이 연결되어야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는 힘과 자원을 더 많이 얻을 수 있습니다. 교회 공동체와도 연결이 되어야 하고, 다른 가정과도 연결이 되어야 하지만, 무엇보다 부모님 세대와도 바른 관계 정립으로 연결이 되어야 합니다. 부모님이 이해하지 못해서 내뱉는 말들이 상처가 된다고 부모와 관계를 단절하거나 외면하면, 자녀를 지탱해 줄 가장 강력한 고리를 끊어내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자폐아 가정은 어떻게 부모세대와 연결이 되어야 할까요? 부모님의 관심과 걱정과 기도기 불편하더라도, 외면하지 말고 도리어 감사하게 받아들이는 것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 저희가 다 알아서 할게요. 신경쓰시지 마세요' 라기보다 ' 어머니, 저희 가정을 위해 이렇게 기도해 주시면 큰 힘이 될 거 같아요' 이렇게 마음을 열고 기도를 부탁하고, 그 기도에 대해 적극 감사를 표현하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 자녀를 위해 기도해 주시는 믿음의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계시다는 것은 얼마나 커다란 자산인지 모릅니다. 눈에 보이는 자산은 아니지만, 자녀의 인생에 엄청난 영적인 복과 유익을 가져다 주는 보이지 않는 자산입니다. 그러므로 윗 세대와의 관계를 잘 맺어서, 자녀들이 윗세대로부터 내려오는 영적인 유산을 물려받도록 해야 합니다. 부모가 돈을 움켜쥐고 있어야 자식에게 대접받는다는 게 아닙니다. 부모가 기도로서 영적인 유산을 물려주고, 그것을 자녀 세대가 소중하게 받는다면, 세대와 세대를 이어 아름다운 믿음의 가정들이 회복될 수 있는 것입니다. 부모 공경은 자폐아 가정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되는 하나님의 명백한 뜻입니다.
가정의 힘은 자폐아 가정이나, 정서적인 어려움을 가지고 있는 자녀를 둔 가정 모두에게 더욱 필요합니다. 부부가 서로 한 팀이 되고, 부모와 자녀간에 영적인 고리가 잘 연결되어 가정의 질서가 세워지면, 그 속에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이 풍성히 임하고, 모든 문제를 이길 수 있는 하늘의 능력이 공급되기 때문입니다.
서지현 사모 (가정의 힘 교육위원)
* 서지현 사모는 고려신학대학원에서 신학(M.Div)을 공부하고, 미국 Calvin Theological Seminary에서 예배학(Th. M)을 공부했다. 다년간 어린이 사역자로 섬기면서 아이들과 부모들, 청년들을 위한 예배, 교육 프로그램, 뮤지컬 등을 기획하고 제작해왔다. 지금은 일원동교회와 <가정의 힘> 교육위원과 사무국을 섬기고 있으며, 자폐 장애를 가진 아들과 늦둥이 딸의 엄마로서 성경적 자녀양육을 위해 힘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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