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교육

아버지들을 위한 변명

 

최영우 대표(㈜도움과나눔)

나의 갱년기와 우울

나는 아버지와 남자인 나에게도 갱년기가 올 수 있다는 것을 몰랐다. 두 아이가 중고등학생 시기에 나는 갑자기 몸이 이상해지는 것을 느꼈다. 얼굴에 화기가 가득 차고 자주 버럭버럭 화를 내고 참지를 못했다. 아이들에게 화를 폭발한 적도 있었다. “아차” 하는 생각이 들어서 스스로 신촌 세브란스병원 정신과 전문의를 찾았다. 선생님은 내가 스트레스를 견디는 둑의 높이가 현저히 낮아졌다고 하셨다. 3개월 동안 병원을 방문했고 약물치료를 받았다. 주치의는 약 외에 3가지를 권하셨다. 1. 모든 어려움을 아내와 상의하라 2. 하루에 30분 이상은 멍 때리는 시간을 만들라 3. 운동을 시작하라.

 

나는 경상도 사람에다가 매우 주도적인 사람이다. 아내에게 고민거리를 시시콜콜 이야기하지 않았다. 해결할 수 없는 자녀 문제와 사업상 고민은 답이 생길 때까지 혼자서만 끙끙 앓았다. 답과 결론만 이야기하는 스타일이었다. 해결책이 없는 문제도 아내와 나누면 가벼워질 수 있다는 것을 그때 처음 알았다. 답이 아니라 과정을 이야기하는 것이 부부의 대화라는 것이 나를 많이 자유롭게 했다.

멍 때리는 시간과 운동은 내게 안식과 생각의 단절이라는 귀중한 가르침을 주었다. 나 자신을 귀중히 여기는 것에 대해서 더 알게 해주었다. 남성의 갱년기에 운동, 건강한 취미, 새로운 학습은 새로운 삶의 단계로 들어가는 중요한 무기가 된다. 갱년기를 지나면서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스케치를 시작하고, 나를 위한 시간을 쓰는 것에 대해서 인색하지 않게 되었다. 3개월의 치료과정은 연약한 나를 더 보듬어 안고 귀중하게 여기는 계기가 되었다.

 

 

짐을 지려면 힘 빼는 법을 배워야 한다.

가장은 짐을 지는 사람이다. 그것도 평생 짐을 진다. 온 우주의 짐을 지시는 하나님의 속성과 같이 이 땅의 아버지도 짐을 지는 존재다. 이들은 자신도 모르는 무거운 삶의 짐을 지고 간다. 신약성경이 쓰인 그리스어에 전라도 말 ‘거시기’, 영어의 ‘do’처럼 다양한 쓰임새가 있는 말 중의 하나가 바로 짐을 진다는 말이다. φέρω(페로)라는 동사는 우리의 짐을 지시는 하나님의 속성을 뼈저리게 느끼게 하는 말이다. 이 동사는 ‘십자가를 진다’, ‘견딘다. 인내하고 참는다’, ‘열매를 맺는다’, ‘만물을 붙든다’ 등에 사용된다. 견디고 인내하는 것과 짐을 지고 열매를 맺는 일이 깊이 연관되어 있다는 것은 많은 말을 해준다. 가정에서 생명이 역사하는 데에도 견디고, 참고, 십자가를 지는 것이 필요하다. 그것이 아버지와 가장의 삶이다.

 

가장들이 짐을 지고 견디는 일을 통해서 가정에 생명의 역사가 일어난다. 그러나 가장들은 힘이 든다. 지치고 상처를 입는다. 강해지려고 하면 할수록 더욱더 상처를 받는다. 우리 가장들은 무한한 생명의 원천이신 하나님과는 달리 지치고 낡아지고 상처를 입는다.

 

 

지금은 스위스로 돌아갔지만 몇 년 동안 스위스 철학자인 알렉상드 졸리앙은 나의 친한 친구였다. 심한 뇌성마비 장애인인 졸리앙은 장애를 가지고서도 많은 사람에게 영감을 주는 대중적 철학자다. [인간이라는 직업], [왜냐고 묻지 않는 삶] 등 무수한 베스트셀러를 쓴 작가다. 졸리앙이 당시 불면증이 걸린 재수생인 내 아들에게 불면에 대한 철학적 해석을 하면서 들려준 말이 아직 내 마음에 깊이 남아있다. 졸리앙은 중증장애를 가진 사람으로서 아름답고 건강한 여인을 만나 결혼한 것에서 행복을 느꼈다.

 

그런데 아내가 임신한 것을 알게 된 순간 깊은 우울에 빠졌고 자살 충동마저 느꼈다. 내가 질 수 없는 짐인 아이, 내가 보호하고 통제할 수 없는 아이의 존재가 졸리앙의 모든 삶의 균형을 허물어버리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라고 했다. 극심한 우울에 시달리던 졸리앙에게 하나님께서 마음에 속삭이셨다고 한다. “내가 보호하고 지킬 아이인데 네가 왜 두려워하느냐?” 졸리앙은 그 이후에 자유로워졌다. 큰딸 크리스틴은 얼마나 밝고 예쁜 아이로 자랐는지 모른다. 졸리앙은 이제 두 딸과 한 아들의 아빠이다. 자기 혼자 짐을 지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배운 그는 행복한 아빠가 되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와서 배우라”고 하신 주님께 우리는 배워야 한다. 가장들은 짐을 지는 법을 배워야 한다. 막무가내의 막힘이나 혼자서 애쓰는 생짜 베기 힘으로는 제대로 짐을 질 수 없다. 가장으로서 짐을 지라는 명령에는 지혜롭게 짐을 지는 법을 가르치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이 함께 담겨있다. 크고 오래가는 힘은 부드러움에서 나온다. 연약함을 인정하고 겸손해지는 과정을 통해서 가장은 더 온전히 짐을 질 수 있다.

이스라엘의 가장은 매주 안식일을 이끌며 짐을 지는 것이 무엇인지를 배운다. 짐을 지는 것과 안식하는 것이 서로 어떻게 통합되는지 몸으로 배운다. 가족을 위해서 돈을 벌고, 자녀 양육과 가정의 크고 작은 일의 결정과 부담을 받아들이는 동시에, 쉬고 하나님께 맡기는 법을 배운다. 안식을 통해서 일하시는 하나님을 배운다. 주 안에서 참 쉼을 얻는 이들만이 무거운 책임을 져야 하는 자리에 경쾌하게 나아가고, 그 자리를 감당할 수 있다.

 

가장들은 아프고, 쓰러지고, 상처 입는다. 아내와 자녀의 깊은 격려와 위로, 지지가 필요하다. 약하고 쓰러지고 상처 입어도 짐을 질 수 있고, 짐을 져야 한다. 가장이 된다는 것은 연약함과 겸손 속에서 강함을 배우는 과정이다. 나와 같은 연약한 가장들이 약함 속에서 하나님의 강함을 경험하고 가장으로 짐을 지고 견디는 지식에서 자라가기를 간절히 바란다. 힘든 길이지만 복된 길이다. 만물을 창조하시고 다스리시는 아버지가 우리를 아버지로 부르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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