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 엄마, 여성이란 부르심

 

서지현 사모 (가정의 힘 교육위원)

 

어느 결혼식 피로연 자리에서 하객으로 참여한 젊은 부부의 하소연을 들었다. 부인의 불만은 ‘결혼 전이나 신혼 때는 그렇게 스윗하고 자상하던 남편이 아이를 낳고 나니 왜 이렇게 굼뜨고 둔해졌는지 모르겠다’는 거였다. 반면, 남편은 ‘내가 철인이냐, 직장 생활 열심히 하고 집에 와서 육아까지 팔 걷어붙이고 도와주는 게 얼마나 피곤한지 아냐. 둔해진 게 아니라, 피곤해서 몸이 안 움직이는 거다’고 항변하는 거였다. 남편이 답답하다고 느끼는 부인의 입장도 이해가 되지만, 남편도 일과 육아까지 병행하느라 얼마나 힘들지 짐작이 되었다. ‘우리가 보기에 남편은 신혼 때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자상한 남편이다. 단지 센스 있고 판단력 빠른 부인의 눈높이에 조금 못 미치는(?) 것뿐이다. 기대치를 낮추고, 남편에게 감사한 점을 생각해 봐라. 힘들게 일하고 집에 와서 아이 씻기고 놀아주는 일까지 도맡아 주는 남편 어디 가도 찾기 어렵다’고 다들 웃으며 입을 모았다. 

 

우리는 너무 쉽게 감사한 일들을 당연한 것으로 바꿔 버린다. 감사한 것들이 당연한 것으로 바뀌는 순간, 지나친 기대와 욕심이 모든 것을 짜증과 불평으로 몰아간다. 언젠가 남편이 나에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너는 남편이 운전도 잘 하고, 아이들하고 놀아주기도 잘 하고, 너 원하는 것 다 사주고, 좋아하는 곳 다 데려다주고, 그러면서 자기 일도 빈틈없이 완벽하게 잘 하고, 말도 표현력 있게 잘 하고, 집안일도 잘 도와주는 남편이길 바라는 거지? (나: 응, 맞아^^) (남편: 버럭~) 야, 세상에 그런 남편이 어딨냐? 하나만 해라. 나는 단순해서 복잡한 거 절대 못한다!’ 농담처럼 웃었지만, 조금은 충격이었다. 그래서 곰곰이 생각해 봤다. ‘내가 정말 남편에게 너무 많은 걸 기대한 걸까? 그래서 자꾸 잔소리가 많아지는 걸까? 정말 지금의 남편만으론 만족할 수 없는 걸까? 남편에게 딱 한 가지만 바란다면 뭘 바라야 할까?’ 꼬리를 물고 생각하다 보니, 내 남편과 아이들 아빠로 그 자리에 있는 것, 자신의 부르심에 충실한 것만으로 감사하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그 후론 남편이 하는 일이 마음에 안 들고, 잔소리가 올라오더라도 ‘그래, 한 가지만으로 족하다! 감사하자!!’ 그렇게 생각을 바꾸려고 노력한다. 여전히 하루에도 열두 번 넘게 잔소리할 일이 넘치지만 말이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아담을 위해 ‘돕는 배필’을 지으셨다고 말한다(창2:18). 여기서 돕는 배필은 꼭 맞는 배필, 꼭 맞는 돕는 자 (a helper suitable)이다. 내가 가진 강점이 배우자의 약점을 보완하도록 하나님이 ‘맞춤 제작’ 하셨다는 뜻이다. ‘내 남편은 이런 점이 정말 못마땅하고 짜증나’가 아니라, ‘내 남편은 이런 점이 마음에 안 들지만 그래서 하나님이 나를 붙여주셨지. 내가 그 부분에서 이 사람을 도울 수 있으니 감사하지’로 관점을 바꾸게 한다. 하지만 현대 여성들은 ‘돕는 자’라는 성경의 표현이 다소 불편하다. ‘왜 나만 남편을 도와야 하지? 남자나 여자나 서로 동등한 데 서로 도와야 하는 거 아닌가?’라는 의구심이 든다. 성경은 남자와 여자가 동등하다는 관점에서는 가히 혁신적이다. 가부장 문화가 지배적이던 고대 시대에 이미 남자와 여자가 동등한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다고 선언하기 때문이다(창1:28). 그런데 왜 아내의 역할은 남편을 돕는 것이라고 할까? 여기서 ‘돕는다’(히브리어로, 에제르)는 표현은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돕는다, 강대국이 약소국을 돕는다고 할 때 사용되는 단어라는 것을 알면, 오해가 풀린다. 여성이 남성보다 열등하거나 부수적인 존재라서가 아니라, 여성이 남성과 다른 강점을 가진 존재로서, 하나님이 우리를 도우시듯 돕는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아내에게 남편의 힘과는 다른 능력을 주셔서 그를 (말하자면 하나님이 구원하시듯) 구원하게 하셨다. 그것이 여성에게 돕는 배필의 역할을 주신 의미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소명은 다중적이다. 우리는 직업이나 사회적 역할로서 소명은 생각하지만, 가정에서 남편과 아내로, 엄마로서의 역할은 소명과 연결 짓지 않는다. 아내는 결혼하면 그냥 되는 거고, 엄마는 내 마음대로, 그냥 하면 되는 줄 안다. 혹은 미디어에서 비치는 아내상이나 자녀교육에 성공했다는 엄마들이 롤모델이 되기도 하고, 좋든 나쁘든 무의식중에 원가정의 부모님 모범을 답습하기도 한다. 하지만 성경은 아내의 역할, 엄마의 역할이 하나님이 맡기신 거룩한 소명이라고 말한다. 아내는 남편을 ‘돕는 자’란 부르심이 있고(창2:18), 엄마는 세상을 회복시킬 의의 후손(여자의 후손, 창3:15)을 낳아 보호하고 양육하고 훈계해야 할 사명이 있다(잠 1:8, 31:1, 엡6:4). 남성이 결코 대체할 수 없는, 여성에게만 주신 독특한 부르심이다. 우리의 수많은 소명 중에서 어쩌면 가장 분명하고, 오래 지속될 소명은 (결혼한 여성이라면) 아내로서, 엄마로서의 부르심이라는 것을 기쁘게 직면하고, 헌신해야 한다.

 

 

30대에 읽었던 제럴드 싯처의 <하나님의 뜻>이라고 하는 ‘내 인생책’이 있다. 제럴드 싯처는 불의의 교통사고로 아내와 어머니, 막내까지 한꺼번에 잃는 끔찍한 비극을 겪었다. 그리고 자신의 인생에 닥친 이해할 수 없는 일을 두고 ‘하나님의 뜻’을 집요하게 물으며 고뇌하는 가운데 이 책을 썼다. 그가 몰두했던 물음은 ‘알 수 없는 하나님의 뜻’에 대한 것이었지만, 오히려 하나님은 그에게 ‘분명히 알 수 있는 하나님의 뜻’에 집중하게 하셨다. 그가 깨달은 분명한 하나님의 뜻이란, 하나님의 계명을 행하는 것, 삶 속에 주어진 수많은 (때론 서로 충돌하는) 소명에 순종하는 것, 미래는 하나님의 영역임을 인정하고, 현재를 충실히 살아가는 것이다. 그리고 그는 책의 서문에 이렇게 쓴다. ‘나에게 너무나 분명한 하나님의 뜻인 세 아이에게’ 아내를 잃은 홀아버지로서, 남겨진 세 아이에게 여전히 좋은 아빠가 되는 것, 아무리 힘들고 피하고 싶더라도 아버지라는 거룩한 사명에 충실하는 것이 가장 명확한 하나님의 뜻이라는 거다.

 

엄마라는 소명, 아내라는 역할이 달갑지 않을 수 있다. 우리는 누구도 아내와 엄마가 되기 위해 교육받지 않았다. 그저 한 사회인이 되도록 남성과 동등한 교육을 받았는데, 갑자기 아내, 엄마라는 소명이 주어지니 당혹스러울 수 있다. 하지만 성경은 우리가 그 소명을 겸손히 받듦으로 세상의 구원이 이루어진다고 한다(딤전 2:15). 때론 철없는 아이 같고, 이런저런 면이 답답하게 느껴지는 그 남편을 하나님이 내게 주신 능력으로 도울 때, 그 남편이 여호와의 군대가 되어 우리 가정과 하나님 나라에 승리를 안겨줄 것이다. 출산과 양육의 수고가 힘들고 무겁게 느껴지더라도, 위로부터 주시는 힘과 지혜로 감당할 때 그 자녀들을 통해 의의 후손들이 이어져 지옥의 문을 부수는 ‘천국의 침공’이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까지 지속될 것이다(마16:18).

 

 

‘내 남편은 가장이다! 나는 가장인 남편을 돕도록 부르심 받은 아내다! 나는 말씀으로 자녀를 세우고 양육하도록 부름받은 엄마다!’를 매일 되뇌며, 이 소명을 기쁨과 사랑으로 받아들이는 믿음의 어머니들이 일어나 이 땅의 가정들이 변화되고, 세워지기를 바란다.

 

‘지혜로운 여인은 자기 집을 세우되 미련한 여인은 자기 손으로 그것을 허느니라 (잠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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