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혜향 교장(독수리 기독학교)
제가 몇년 전에 이스라엘에 갔을 때 안식일에 한 정통파 유대인 가정에 초청 받은 적이 있습니다. 정통파 유대인 가정에서 안식일을 어떻게 지키고, 어떤 활동이 진행되는지 볼 수 있었습니다. 사실 유대인은 역사상 수천 년 동안 가정 안에서 신앙을 전승하는 일이 퇴색되지 않은 유일한 민족입니다. 그 가정의 안식일 의식을 보니까, 젊은 아버지가 가족들 앞에서 제사장과 같은 역할을 능숙하게 합니다. 빵을 자르고, 포도주를 따르고, 꼬마들부터 모든 가족들이 하나님 말씀을 따라 함께 기도하고 함께 성경을 읽도록 잘 지도하는 모습을 보고 정말 깜짝 놀랐습니다. 그 자리에 유명한 정통파 랍비인 장인도 있었는데 그 장인은 가만히 있고 젊은 사위가 그 가정의 안식일 예배를 다 인도했습니다. 우리나라로 치면 총회장급 거물 장인을 옆에 두고도 어린 사위가 모든 의식을 다 인도한 것입니다. 그 대단한 장인도 감히 한 가정의 영적 책임자인 사위의 권위와 역할을 침해하지 않았습니다. 오늘 한국 사회 대부분의 가정이 가장을 경제적 책임을 지는 사람으로만 인식하고, 영적인 지도와 책임은 어머니 몫으로 생각하는 것과 너무나 대조적이었습니다. 사실 우리도 아버지들이 그 일을 해야 합니다. 또 아버지들이 그 일을 할 수 있도록 모두가 같이 도와야 합니다.
이런 말을 들으면 아버지들은 걱정이 앞섭니다. 가장의 영적 책무가 너무 번거롭고 무겁게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내가 말씀도 잘 모르는데 과연 해낼 수 있을까?” “사회생활만 해도 정신 못 차리게 바쁜데 언제 이 일들을 다 하지?”라는 압박감이 들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걱정은 안 해도 된다는 것을 아버지들에게 꼭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하나님이 각 사람을 불러 그 분의 일을 하도록 명령하실 때는 반드시 부르심에 합당한 능력을 주시고, 돕는 사람을 붙여 주시기 때문입니다. 아버지들에게도 이미 돕는 사람을 하나씩 붙여 주셨습니다. ‘아내’ 말입니다. 그러니까 염려하지 말고 “그래, 이건 내 일이니까 내가 해야지!”라는 마음만 확실히 가지면 됩니다. 무엇보다 이 일은 피할 수가 없는 일입니다. 그냥 스스로에게 각인시켜야 합니다. 가장의 영적 책임은 하나님이 창조 때부터 정하신 뜻이기 때문입니다. 그 뜻에 순종할 때만 하나님이 예비하신 가정의 생명력과 풍성함을 누릴 수 있습니다.
몇 년 전 아버지 모임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아버지 모임에서 교육을 받은 후에 자녀와 가까워지려는 시도를 했던 아버지들이 종종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이전에 자녀들의 개인적인 생활에 별 관심이 없었던 아버지들이 학교에서 부모교육을 받은 이후 “요즘 학교생활은 어때?” “어려운 일은 없어?” 등등 자녀에게 대화를 시도하면, 아이들이 “괜찮아요.”, “없어요.”라고 퉁명스럽게 대답하거나 방으로 들어가 버린다는 것입니다. 아버지들은 모처럼 한 시도가 실패한 것 같아서 멋쩍고 위축되어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는 거였습니다. 그런데 얼마 후에 담임교사들 모임에서 다른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학생들이 선생님들에게 와서 “어제 우리 아빠가 저한테 이러이런 말을 했어요.” 하면서 자랑하고 기뻐한다는 겁니다. 선생님은 학생들에게 종종 그런 얘기를 듣는데, 엄마가 해 준 말로 자랑하는 학생들은 거의 없어도, 아빠가 해준 말을 자랑하는 학생들은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아버지와 자녀, 양쪽의 얘기를 듣게 된 나는 아이들이 비록 아버지가 자신에게 어떤 말을 해줄 때에 귀담아 듣지 않는 것처럼 행동하거나 퉁명스럽게 답하지만, 내심 아버지가 보여준 관심의 말들을 가슴에 간직하고 자랑스럽게 여긴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가족에게 하는 가장의 한 마디 관심의 말이 어떤 힘을 발휘하는지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 후 나는 선생님들께 아이들이 했던 아버지에 대한 자랑을 기억나는 대로 알려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리고 그 내용을 아버지 교육 때 아버지들에게 말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아버지들께 아이들은 아버지의 말 한마디를 마음에 간직하고 자랑하고 힘으로 삼으니까, 겉으로 보이는 반응에 위축되지 말고 하나님이 주신 권위를 따라 필요할 때마다 관심과 격려의 말을 하라고 했습니다. 이 이야기를 듣고 아버지들이 많은 용기를 얻었습니다.
<가정세움학교> 제 1강 가장, 그 거룩한 부르심에 응답하라 중에서
* 단혜향 교장은 기독교 대안중고등학교인 독수리 기독공동체의 설립자이자 가정의 힘 총괄 디렉터로 섬기고 있다. 영성과 실력을 겸비한 하나님 나라 인재 양성을 목표로 가정과 학교와 교회가 함께 하는 성경적 교육의 회복을 위해 지난 20년간 분투해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