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저널

육아에 지친 부모를 일으켜 세우는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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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지현 사모(가정의 힘 사무국장)

 

“결혼을 하고 가정을 꾸리는 것, 태어난 아이들을 불안한 세상에서 지켜내는 것, 나아가 약간 이끌어준다는 것은 한 인간이 이루어낼 수 있는 최고의 업적이라고 확신한다.”

 

유대계 독일 문학가 프란츠 카프카의 말이다. 불과 한 세대 전만 해도 부모님 대부분은 이 말에 동의했던 거 같다. 그러나 요즘 세대들은 결혼과 가정, 자녀 출산 앞에서 손익계산서를 더 열심히 두드린다. ‘이 결혼이 나에게 정말 이익일까? 괜히 결혼해서 나만 손해 보고 경쟁에서 뒤처지는 게 아닐까? 아이를 가지면 내 인생은 이제 끝나는 게 아닐까? 아이를 키우느라 부부 중 한 사람의 커리어가 멈추면, 돈 들어갈 일이 점점 더 많아지는 인생의 중반을 어떻게 살까?’ 행복한 가정에 대한 기대보다 미래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과 걱정이 앞서는 것이다. 이 모든 시대적 불안을 뚫고, 사랑해서 결혼하고, 자녀를 낳는 믿음의 결단과 희생까지 해낸 부부들에게 ‘잘했다, 대단하다’ 칭찬과 박수를 보내고 싶다. 우리 시대는 당연한 것들이 결코 당연하지 않은 시대가 되어버렸으니까. 그야말로 한 인간이 이루어낼 수 있는 최고의 업적을 향해 용기 있는 걸음을 내디딘 것이리라!

 

 

문제는 여기서부터다. 아이를 낳기는 했는데, 어떻게 키워야 하는지, 어떻게 부모가 되는 건지, 교과서도 없고, 매뉴얼도 없고, 배워본 적도 없다. 처음 잡아보는 운전대를 아무런 자격증도, 준비도 없이 덜컥 잡은 셈이다. 급한 대로 육아서와 인터넷과 유튜브를 열심히 뒤져보지만, 내게 필요한 정보가 딱 떨어지지도 않고, 여러 다른 정보들이 때로는 혼선만 일으킨다. 어디로 가야 할지, 어떻게 가야 할지도 모르는데, 운전대는 내 손에 있고, 아이는 밤낮으로 나만 바라보고 있다. 결혼 전에 별문제 없던 부부 사이가 아이 키우는 문제로 다툼이 잦아지고, ‘네가 해라, 네가 해라’로 서로 책임을 떠넘기다 원망과 불평이 쌓여간다. 밤에 잠 못 자는 수고, 먹이고 입히고 씻기고 재우고 놀아주는 수고가 끝이 없는데, ‘나는 누구고, 내 인생은 어디로 갔나.’ 대답해 주는 사람도, 도와주는 사람도 없다. 내 한 몸도 건사 못하는 인간이 어쩌자고 한 인생을 책임지겠다고 대책 없이 부모가 되었는지 원망스럽고, 배우자에게 화가 난다.

 

 

육아와 사투를 벌이는 부모의 심리를 너무 부정적으로만 묘사한 거 같지만, 사실 첫아이를 키웠을 때 내가 딱 그 심정이었다. 물론 나는 평범한 아이를 키우는 엄마는 아니었다. 장애가 있는 아이였기 때문에 육아의 강도가 남보다 몇 배는 더했다. 그러나 둘째 아이를 뒤늦게 낳아 키우며 현실적인 육아 강도보다 더 중요한 것은 관점과 태도라는 것을 느낀다. 첫아이를 낳은 후 세월이 많이 흘렀고, 그사이에 한 인간으로서, 엄마로서 성장한 내면의 ‘여유’가, 물리적인 한계에도 불구하고 육아를 좀 더 쉽고, 행복하게 만들어 주었다. 그렇다고 내가 갑자기 육아에 없던 소질이 생겼다는 뜻은 아니다. 여전히 육아의 수고는 낯설고 힘에 벅찬 일이었다. 그럼에도 지금 나는 내 인생에서 가장 잘한 일이 결혼하고 자녀 둘을 낳아 기르는 일이었다고 당당히 고백할 수 있다.

 

인생에서 정말 중요한 일들은 손익계산서를 두드려서 나오지 않는다. 우리 부모님들이 자기만 생각하고 손익계산을 했다면 우리 중 누구도 이 땅에 존재할 수 없었다. 그보다 훨씬 더 전에 하나님께서 오직 자신만 생각하셨다면, 이 세상은 창조될 이유조차 없었다. 하나님은 자충족적인 분이신데, 뭐가 부족해서 창조의 수고를 힘들게 감당하신단 말인가. 그런데도 하나님은 그 힘든 수고를 감당하셨고, 우리 부모님들도 부족하지만 그랬다. 사랑이 그 모든 수고를 감당하게 한 힘이었다. 우리는 사랑의 수고를 통해 이 땅에 보내지고 살게 된 존재들이다. 사랑은 힘듦과 고통을 견디고 이기는 더 큰 능력이다. 어쩌다 우리는 사랑의 수고를 손익계산서와 맞바꾸는 세상을 살게 되었을까. 분명한 것은 그런 세상이 결코 더 행복하지도, 더 오래 지속 가능하지도 않다는 사실이다. 하나님은 사랑이시고, 인간은 사랑함으로써 존재하고 행복을 누린다.

 

 

육아의 힘든 수고를 넉넉히 감당하게 하는 또 다른 동력은 소망이다. 미래에 대한 그림이고, 약속이다. 첫 아이가 4, 5살쯤이었던가. 지금 생각해보니 나는 육아 우울증을 앓고 있었던 거 같다. 아침에 눈뜨기가 싫고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날들이 많았다. 그러던 어느 주일예배 때(어머니 주일이었던 거 같다) 찬양사역자가 느닷없이 이런 멘트를 날렸다. “제가 오늘 이 자리에 있는 것은 전적으로 어머니의 기도 때문입니다. 이 자리에 계신 모든 어머니는 정말 위대한 분들입니다.” 그러면서 어머니들을 일으켜서 축복하는 찬양을 다 같이 불렀다. 그 자리에서 얼마나 펑펑 울었는지 모른다. 아무도 엄마가 대단한 일이라고 인정해 주지 않던 현실에서, 처음 들은 큰 위로였다. 그때 처음으로 내 속에 자녀의 미래에 대한 그림이 그려졌다. 어느 날 내 아이도 “지금 내가 이 자리에 서 있는 것은 엄마의 기도 덕분입니다.” 이렇게 고백할 날이 있겠구나, 그러면 나도 인생의 경주를 다 끝내고, 하나님께 칭찬받겠구나. 소망이 생겼다. 그래서 나는 다시 일어섰고, 버텨낼 수 있었다.

 

 

 

그러나 여전히 철없는 엄마였던 나는 둘째 아이를 임신하자 낳기도 전에 겁부터 먹고 하나님께 따졌다. ‘지금 와서 둘째를 주시면 내 인생은 뭐가 됩니까. 지금까지도 겨우 버텨왔는데, 또 그 과정을 어떻게 반복합니까.’ 그러고 있는데 하나님께서 시편 128편 말씀을 약속으로 주셨다. ‘네 식탁에 둘러앉은 자식들은 어린 감람나무 같으리로다’ 그래도 마음이 내키지 않던 차에, 톰 라이트의 <주기도와 하나님 나라>라는 책의 한 대목이 부딪혀왔다. 하나님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해 달라는 기도에 대한 부분이었다. ‘이 땅에는 여전히 정의와 공의가 임하지 않은 곳이 많다. 그래서 고통 속에 힘들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 그들의 목소리를 대변해 주고, 그들 속에 나의 뜻이 이루어지게 할 사람들이 필요하다, 네 아이가 그런 삶을 살도록 내가 부르고 선택했다면, 순종할 수 없겠느냐’ 그 마음이 들었다. 그러면서 마리아의 순종으로 예수님이 이 땅에 태어나신 장면이 떠올랐다. 얼마나 눈물을 쏟았는지 모른다. 내가 감당할 수 없는 일 같지만, 순종이 복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그래서 아이 이름을 연약한 사람들을 대변하는 소리가 되라고 ‘소리’라 지었다.

 

 

육아의 수고를 이겨내는 마지막 키워드는 성장이다. 사람은 평생에 걸쳐 성장하는 존재이다. 그런데 자녀만큼 부모를 성장시켜주는 도구(?)는 없다. 자녀를 키우는 과제는 힘든 만큼 부모의 용량(capacity)을 더 깊게 하고, 더 넓게 하고, 결국 인생의 자산을 더 축적하게 해준다. 자녀를 낳기 전의 부모는 ‘내 꿈만’을 위해 달려가는 기관차이다. 그러나 자녀를 키우는 부모는 내 꿈보다 더 큰 ‘우리’를 봐야 한다. 속도는 훨씬 느린 것 같지만, 더 많은 것을 보고, 더 이타적이 되고, 더 효율적이 되고, 인생을 더 넓게 살고, 더 인간다워진다. 언젠가 유튜브 CEO의 인터뷰를 보는데 자녀가 5명인 엄마였다. 일과 육아를 병행하는 부모이다 보니 유튜브가 교육에도 상당히 많은 공을 들인다고 했다. 다섯 아이의 엄마라는 사실이 커리어에 방해가 된다기보다, 오히려 그녀의 커리어를 더 깊이 있고, 탁월하게 하는 자산이 되는 것이다. 나는 육아와 일을 병행하느라 정신없는 워킹맘들에게 꼭 이 이야기를 해 준다. ‘워킹맘에게 아이는 무거운 짐이 아니라 가장 큰 자산이다!’ 물론, 자녀를 자산 가치로 환원할 수 있다는 말이 아니다. 그러나 굳이 따진다면 어떤 자산보다 더 큰 자산이다. 부모와 자녀 모두를 성장시키는 엄청난 동력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랑과 소망, 그리고 성장. 육아에 지친 부모를 일으켜 세우는 세 가지 키워드는 사실 모든 그리스도인을 향한 하나님의 마음이다. 우리가 하나님을 닮아간다면 결국 더 좋은 부모가 될 수 있다는 거다. 겁내지 말고 쫄지 말자. 하나님은 부모 된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능력과 자원들을 예비해 두셨다. 그 하나님의 풍성하심 안에서 육아는 사랑이고, 행복이고, 지속가능한 성장이고, 새로운 미래이고, 약속 있는 소망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