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갑신 목사(예수향남교회) 생각지 않게 발생한 사건들도 풍랑일 수 있지만, 내 존재를 흔드는 관계들도 맞서기 버거운 풍랑입니다. 그리고 가정은 늘 이런 풍랑들에 시달립니다. 하지만, 풍랑을 어떤 마음과 자세로 이해하고 맞이하느냐에 따라, 그것은 나를 삼킬 수도 있고 단단하게 키울 수도 있다는 걸,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풍랑을 맞이하는 마음과 자세는 내가 하나님을 어떤 분으로 알고 있느냐, 하나님을 과연 어디까지 믿고 있느냐에 따라 현저히 달라집니다. 제자들이 예수님의 권면을 따라, 바다 같은 갈릴리 호수를 건넙니다. 이들 중 다수는 뱃사람 출신이고, 어린 시절부터 갈릴리에 익숙합니다. 하지만 불현 듯 만난 이번 풍랑은 좀 비상하였습니다. 과거에 경험해보지 못한 위력을 지녔거나, 과거의 경험에 의하면 사람을 죽일 게 분명한 풍랑이었습니다. 제자들은 당황했습니다. 그리고 할 수 있는 모든 조치가 소용없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그 때 비로소, 예수님이 주무시고 계시다는 걸 알게 됩니다. 얼마나 황당하고 짜증스러웠을까요? 그들은 예수님을 격하게 깨웁니다. 그리고, 일어나신 예수님은 즉시 풍랑을 잠잠케 하십니다. 그 때, 제자들의 고백은 이것이었습니다
난 꽃에는 ‘가정의 힘’이 있다. 최영우 대표(가정의 힘 교육위원) 3년 전부터 갑자기 난에 빠지기 시작했다. 남미, 동남아, 한국, 중국 등의 대표적인 난을 조금씩 모아서 기르기 시작했다. 지금 베란더에는 50여개 종류의 난이 있다. 고가의 희귀난들은 나에게 맞지도 않고 원하지도 않아서 1,2만원 대 비싸야 3-4만원대의 난들로 갖추었다. 3년의 실험과 조정을 한 끝에 365일 집에 항상 난 꽃이 필 수 있도록 관리할 수 있었다. 처음에는 그냥 신기하고 예뻐서 좋아했다. 시간이 가면서 가끔씩 난이 하는 짓(?)이 내게 삶과 가정에 대해서 다양한 생각거리를 던져주었다. 이 이야기들 중 몇 가지를 나눈다. 다양성과 차이에 대해서 존중하는 법을 배운다. 전 세계에서 꽃 피는 식물의 약 1/4이 난(orchid)이다. 정확하지는 않지만 약 2 만 종의 난이 있다고 한다. 그 중 90%는 흙에서 자라지 않고 나무나 돌에 붙어서 자라는 착생란이다. 우리가 양난이라고 부르는 호접란(phalaenopsis)은 사실 동남아시아(특히 필리핀 등)가 원산지이다. 서양사람들이 상업화에 성공해서 양난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난의 태반은 아시아와 중남미가 원산지다. 원예적으로 상업화
보이는 하나님(?!)으로 세우신 부모를 공경하라 이윤석 목사 (독수리기독학교 연구소장) 부모 공경 계명의 독특성 모세가 시내산에서 하나님께 받은 십계명은 신자들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잘 알려줍니다. 십계명 중에서 1~4번째 계명은 하나님에 대한 것이고, 6~10번째 계명은 다른 사람들에 대한 것입니다. 그런데 다섯 번째 계명인 이 부모 공경의 계명은 하나님에 대한 계명들과 사람에 대한 계명들 사이에 있으면서 부모와 자녀라는 독특한 관계를 이용하여 사람과 사람의 관계뿐 아니라 사람과 하나님의 관계에 대한 교훈도 준다는 점에서 특이합니다. 하나님은 부모에게 자녀를 양육하고 교육하여 독립적인 가정을 이룰 수 있도록 준비시키는 일을 맡기셨습니다. 이 과정에서 부모는 어린 자녀들에게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대신하여 보이는 하나님의 역할을 하면서 자녀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법을 배우도록 해야 합니다. 자녀에게 부모는 그냥 수평적 관계에 있는 동료 인간이 아닙니다. 자녀가 성인이 될 때까지 부모는 자녀에게 하나님을 대리하는 역할을 하는 존재입니다. 부모 공경에 따르는 약속 부모를 공경하는 자녀는 특별한 복을 받습니다. 신명기 5장 16절은 “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명
배준완 목사(일원동 교회) 1. 최근 한 선배 목사님과 대화를 하다 이런 질문을 받았다. “목사님, 교회가 먼저입니까, 가정이 먼저입니까?” 쉽지 않은 질문이었다. 대답을 목구멍으로 삼키고 “목사님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하고 여쭤보았다. “순서로 하면 가정이 먼저지요. 하지만 교회는 하나님께서 태초 이전부터 계획하신 구원과 회복 프로젝트의 핵심 기관이 아닙니까. 그렇게 보면, 선뜻 가정이 먼저라고 할 수도 없을 거 같습니다.” 나 역시 동의했다. 창조의 순서는 분명 가정이 먼저다. 그러나 우리는 죄로 망가진 세상을 살고 있고, 가정 역시 죄의 파괴력에서 자유롭지 않다. 아니, 사실 죄의 영향력과 파괴력이 가장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곳이 가정이다. 인류 최초의 살인이 어디서 일어났는가? 가정 안에서 형제간에 일어난 비극이었다. 가브리엘은 세례요한의 탄생을 사가랴에게 예고하면서 ‘그가 엘리야의 심령과 능력으로 주 앞에 먼저 와서 아버지의 마음을 자식에게 돌아오게’ 할 것이라 했다(눅1:17). 바로, 아버지의 마음이 자식에게 향하는 지극히 당연한 순리조차 무너진 시대에 주님이 오셨다는 의미이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가정은 인간이라는 조건의 시작이지만, 우리가
정갑신 목사 (예수향남교회) 창탕족은 히말라야 5천 고지 창탕고원에서 생활합니다. 양과 야크와 말은 이들의 가족이고 동시에 생명의 자원입니다. 이들은 가축 가족의 살을 먹고 피를 마심으로 생명을 이어갑니다. 그리하여 가축 가족을 도살할 때, 마음 깊은 경의를 표합니다. 가축 가족의 살과 피를 통해 상호 연합이 지속하길 기대합니다. 이런 <내어줌과 생명의 고리>가 우리를 일깨웁니다. 누군가가 자기를 내어줌으로 다른 가족들이 살아 생명을 이어가는 일은 우리 일상에서도 한결같이 경험할 수 있는 현상입니다. 이와 더불어 창탕족의 일상에는, 의미 깊은 통과의례가 있습니다. 가축 가족에게 자유를 줌으로 다른 가족들의 기쁨과 복을 기념하고 기원하는 의식입니다. 수백 리 먼 곳으로 시집간 딸이 출산 후, 갓 난 아가와 함께 친정을 방문합니다. 인적 드문 곳에서 생존을 위한 고된 노동과 씨름하는 날 중 드물게 만나는, 참 반가운 시간입니다. 이때 가장은 방문한 딸에 대한 기쁨을 기념하기 위해 또, 갓 태어난 손주의 미래를 축복하기 위해 양 두 마리를 선택합니다. 양의 뿔에 작은 쇠톱을 이용해, 누구나 알아볼 수 있는 표식을 새깁니다. 영원히 매매하지 않겠다는 서약
이윤석 목사(독수리기독학교 연구소장) 요즘 우리 사회에서는 ‘가장’이라는 말을 들을 수 있는 경우가 그렇게 많지 않다. ‘가장’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것 자체가 남녀평등을 지향하는 현대 사회에는 맞지 않는, 고리타분한 유교적 산물이라고 느껴지기도 한다. 기껏해야 부모가 없거나 부모가 있더라도 실제적인 돌봄을 주지 못하는 상황이라 아이들이 어른 역할을 감당해야 하는 ‘소년 소녀 가장’을 언급할 때에나 사용되는 것 같다. 하지만 성경은 가장을 남편과 아내 중 누구라도 능력 있는 사람, 주도적인 사람이 맡는 것이라 하지 않는다. 가정은 세상과 사람이 처음 존재하기 시작한 때로부터 하나님에 의해 세워진 독특한 기관이다. 가정은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기관 중에 가장 오래된 것으로 가정 자체의 고유한 질서와 원리를 가지고 있다. 가정은 결혼한 남자와 여자, 즉 남편과 아내를 중심으로, 그리고 그들의 자녀들로 형성된다. 남편, 아내, 자녀들로 구성되는 가정에는 하나님이 남편을 리더로 세우셨다. 남편이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자기 역할을 잘 감당하고 아내와 자녀들이 가장인 남편과 아버지를 인정하고 잘 도우면 그 가정은 순기능적인 가정이 된다. 반대로 남편의 능력이 자기보다
정갑신 목사(예수향남교회) 막연히 이름만 들었던 분에게 마음이 크게 끌린 것은 1986년이었습니다. 다니던 학교 도서관에서 우연한 기회에, 그가 거의 홀로 책임지고 만들었던 <성서조선>을 조금씩 꺼내 보면서였습니다. 이 학교에 <성서조선>이 다 있었구나... 하는 감탄으로 시작된 독서였습니다. 그리하여 <김교신, 신앙의 반 사각화에 관하여>라는 작은 아티클을 적어 후배들이 만드는 논문집에 기고하기도 했었습니다. 이제 거의 35년을 지나, <자-신학화 포럼>이라는 모임에 참여하면서 다시 그를 만나는 중, 이번에는 그의 일기만 따로 모은 책을 통해 그의 삶과 마음을 들여다보는 즐거움을 누렸습니다. 그리고, 그의 일기 중 두 세 날이 마음에 남다른 느낌이나 생각으로 남았습니다. 그가 그런 날들 사이를 지나며 살았다는 게 기쁩니다. 내가 어디에 있고 또 있고자 하는지.. 그리하여 어디로 향할 때 어떻게 행할 수 있겠는지를 생각하게 하는 고마운 분의, 삶의 속살이었습니다. 1938년 10월 2일(일요일) 비 날 밝기 전 청량리역으로 향하다. 귀경하시는 모친님을 맞기 위하여. 역에서 입장권 파는 이가 불친절하고 불성실하여 말다
이윤석 목사(독수리기독학교 연구소장) 스포츠 경기에는 개인전이 있는가 하면 단체전도 있다. 쇼트트랙 경기 종목 중 ‘팀 추월’이란 종목은 세 명이 한 팀을 이루어 경기하는데 마지막으로 들어온 사람의 기록이 그 팀의 기록이 되므로 세 번째 선수의 기록을 최대한 높이기 위해 팀원 세 명이 모두 힘을 합쳐야 한다. 2018년 동계올림픽 때 한국 여자 팀 추월 종목 출전 선수들이 두 명은 빨리 들어오고 한 명은 많이 쳐진 채로 들어와 결국 좋은 성적을 내지 못했다. 마지막 선수의 기록이 팀의 기록이 되는데도 나 몰라라 하면서 앞서 들어온 두 선수는 시시덕거렸다. 이런 원리는 가정의 경우에도 유사하게 적용된다. 남편과 아내, 자녀, 부모 등으로 구성되는 가정은 하나의 팀이다. 한 가정의 성과는 가정의 구성원 모두의 성과와 비례하는데 특히 가정 구성원 중 가장 약한 사람의 성과와 비례한다. 건강한 가정은 가정 구성원 모두의 성과, 특히 가장 약한 구성원의 성과를 최대화할 수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보다 근본적으로 중요하게 요구되는 일이 있다. 바로 가정 구성원들이 각자 자신의 자리에 바르게 서서 자신의 역할을 잘 감당하는 것이다. 대표적인 단체 운동 경기인 축구의
얼마 전, 결혼을 앞둔 예비부부를 만나 대화를 나눌 때였습니다. 젊은 예비 신부가 지금까지 살아온 길을 돌아보면 후회가 많다고 해서 살짝 놀랐습니다. 어떤 결정을 해도, 하기 전에 망설이고, 하면서 후회하고, 하고 나서도 후회한다는 것입니다. 최근 한 젊은 엄마에게서도 비슷한 말을 들었습니다. 아이들을 초등학교까지 키우면서 ‘내가 그때 그렇게 하지 말고 이렇게 했어야하는데’ 뒤늦은 후회가 많다고 합니다. 주변을 둘러보면 다들 최선을 다하고 있고, 좋은 삶을 위해 지나칠만큼 노력하고 있는데, 왜 우리는 이토록 불안과 후회가 많을까요? 몇 년 전 TED에서 ‘부모들에게 행복은 아주 높은 목표’라는 강연을 봤습니다. 뉴욕 타임즈의 칼럼니스트이고 <부모로 산다는 것>의 저자인 제니퍼 시니어의 흥미로운 강연이었습니다. 오늘날 부모들이 어떤 세대보다 자녀들을 위해 더 노력하고 있음에도 행복하지 않고 불안과 후회가 많은 이유를 이렇게 설명합니다. 행복은 그 자체를 목표로 할 때 얻을 수 있는 게 아니라, 다른 높은 가치를 추구할 때 따라오는 부산물이라는 겁니다. 행복을 목표로 하는 삶은 결코 행복할 수 없다는 뜻입니다. 그런데도 우리 시대는 너무나 손에 잡기
가정을 세우는 마인드 셋 (주)도움과나눔 최영우 대표 2009년 말콤 글래드웰이 <아웃라이어>라는 책에서 ‘일만 시간의 법칙’을 주장해 전 세계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특정 분야에 하루 3시간씩 일주일에 20시간을 잡고 10년을 연습하면 그 분야의 전문가가 된다는 이야기다. 절반은 맞고, 절반은 틀린 말이다. 일만 시간의 법칙이 맞았다면 모든 가장은 가정 생활의 전문가가 되어야 한다. 현실은 우리 모두가 아는 바와 같이 전혀 그렇지 않다. 일만 시간의 법칙에 많은 비판이 제기되었고, 노력을 통해 탁월해지기 위해서 아래에 소개할 두 가지 요소가 꼭 필요하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점점 동의하는 이들이 많아지고 있다. 40년간 이 분야를 연구한 스탠퍼드 대학의 심리학과 교수 캐럴 드웩의 책 [마인드셋(Mindset)]은 편견을 깬다. 그는 마인드 셋을 성장형, 고정형으로 분류한다. 성장형 마인드 셋을 가진 사람은 삶이 변화할 수 있다고 믿는다. 고정형 마인드 셋을 가진 사람은 변화가 재능에 의해 결정된다고 생각한다. 이들의 차이를 엄청난 통찰을 가지고 설명하고 있다. 긍정적 변화는 다음과 같은 조건이 만족할 때 이루어진다고 주장한다. 타당한 이야기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