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꽃에는 ‘가정의 힘’이 있다.
최영우 대표(가정의 힘 교육위원)
3년 전부터 갑자기 난에 빠지기 시작했다. 남미, 동남아, 한국, 중국 등의 대표적인 난을 조금씩 모아서 기르기 시작했다. 지금 베란더에는 50여개 종류의 난이 있다. 고가의 희귀난들은 나에게 맞지도 않고 원하지도 않아서 1,2만원 대 비싸야 3-4만원대의 난들로 갖추었다. 3년의 실험과 조정을 한 끝에 365일 집에 항상 난 꽃이 필 수 있도록 관리할 수 있었다. 처음에는 그냥 신기하고 예뻐서 좋아했다. 시간이 가면서 가끔씩 난이 하는 짓(?)이 내게 삶과 가정에 대해서 다양한 생각거리를 던져주었다. 이 이야기들 중 몇 가지를 나눈다.
다양성과 차이에 대해서 존중하는 법을 배운다.
전 세계에서 꽃 피는 식물의 약 1/4이 난(orchid)이다. 정확하지는 않지만 약 2 만 종의 난이 있다고 한다. 그 중 90%는 흙에서 자라지 않고 나무나 돌에 붙어서 자라는 착생란이다. 우리가 양난이라고 부르는 호접란(phalaenopsis)은 사실 동남아시아(특히 필리핀 등)가 원산지이다. 서양사람들이 상업화에 성공해서 양난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난의 태반은 아시아와 중남미가 원산지다. 원예적으로 상업화에 성공한 대표적인 난은 1)호접란(phalaenopsis) 2) 카틀레야(Cattleya) 3) 덴드로비움(Dendrobium) 4) 신비디움(Cymbidium) 5) 온시디움(Oncidium) 6) 반다(Vanda) 등이 있다. 우리가 잘 아는 바닐라가 난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이 많지가 않다. 물, 햇살, 공기흐름이 필요하다는 것은 공통적이지만 생육환경과 습성은 많은 차이가 있다. 카틀레야는 직사광선을 좋아하지만 호접란 계통은 은근한 간접적 햇살을 더 좋아한다.
난에는 초콜렛, 커피향, 계피, 바닐라 등 다양한 향이 나는 것들이 있다. 그래서 난은 많은 향수의 원료가 된다.
난들이 저마다의 아름다움과 특성을 가지 듯 사람도 그렇다. 하나님은 하나의 아름다움만 주신 것이 아니다. 가끔 성격이 전혀 다른 난을 집에 들여와서 내가 적응해갈 때면, 내가 더 다양한 사람과 화해를 한 듯한 착각을 할 때가 있다.
넓고 큰 원리를 배워야 좁고 깊게도 알 수 있다.
한국은 높은 산, 바다가 많고 사계절이 뚜렷해서 식물이 다양하다. 그러나 추운 겨울 때문에 자생하는 난 종류는 많지가 않다. 온도가 영상 5도 이하로 떨어지면 견디지 못하는 난들이 많다. 그래서 중남미, 동남아시아처럼 자생하는 난의 종류가 많지는 않다.
그래도 사군자에 난이 들어 있는 것을 보면 예전부터 한국사람들이 난을 좋아한 것을 알 수 있다. 어떤 사람들은 난이 한국의 춘란만 있는 줄 알기도 한다. 선비들이 그토록 칭송하고 그렸던 한국의 난은 신비디움 괴링기(Cymbidium goeringii)라는 학명을 가진 신비디움 종류다. 신비디움 중에서 작은 종류다. 허무할 만큼 신비디움은 종류가 많고 아시아 전역에 넓게 분포한다. 사실 나는 이 난에는 특별히 정이 가지를 않아서 하나만 실험적으로 키우고 있다. 그것도 여름에 피는 저렴한 종류다. 난을 심는 진부한 사기그릇이 만든 거부감 때문 같다.
춘란 외에 한국에서 오래 전부터 사랑을 받아온 자생란이 소엽풍란이다. 초여름에 강한 향을 내는 신비한 흰색 꽃을 피운다. 작은 잎들이 품위가 있고 당당해서 일본에서는 사무라이들의 특별한 사랑을 받았고 이름도 ‘부귀란’이라고 불렀다. 소엽풍란은 한국, 일본, 중국 등에서 자생하고 원예적 가치가 높아서 서양 사람들이 큰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독특한 소엽풍란도 족보를 따져보면 Vanda라는 한 큰 패밀리의 일원이다. 한 가족이라는 것은 교배가 가능하다는 뜻이다. 그래서 소엽풍란의 학명은 Vanda falcata이다. 집에 Vanda 종류 몇 가지를 가지고 있다. 그 중 하나는 어린 아이 크기만한 것이 있다. 사람 만한 Vanda와 소엽풍란이 같은 식구라니 신기할 따름이다.
꽃 집에서 흔해서 2,000원이면 하나를 살 수 있는 대엽풍란도 우리나라 자생종이다. 그런데 이 풍란이 호접란(phalaenopsis)의 식구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호접란은 대표적인 동양의 난인데 인도, 대만, 중국, 동남아, 파푸아뉴기니, 호주 등지에 자라지만 인도네시아와 필리핀에 가장 많은 종류가 산다. 일반 호접란 중에서 향이 있는 것이 흔하지 않은데 대엽풍란은 상큼한 향이 강하다. 영하의 날씨에도 견딜 수 있다. 우리나라가 호접란의 북방한계선인 셈이다. 서양 사람들이 이 난의 아름다움에 빠져서 세계적인 원예식물로 히트시켰다. 특히 흰색의 큰 호접란은 서양 영화의 배경으로 자주 나온다. Phalaenopsis amabilis(필리핀, 인도네시아 원산)라는 원종에서 개량한 것들이다.
호접란이 원예작물로 대성공을 거둔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1) 대량 생산이 가능하다. 2) 개화시기를 조절할 수 있다. 3) 강하고 꽃이 오래 간다. 4) 저렴하다. 우리나라의 난 화원의 주종목이 된 호접란은 작은 떡잎 하나에 1,2천원으로 주로 대만에서 수입한다. 몇 개월을 하우스에서 잘 키우다가 일정한 크기가 되면 갑자기 온도를 10도 낮은 곳으로 옮겨버린다. 그러면 꽃대를 올린다. 그러면 경매에서 약 1만원 전후에 가격이 형성되고 꽃 집에서는 약 1만 5천원등의 가격으로 거래된다. 이 아름다운 꽃의 슬픈 현실은 우리나라에서 매년 약 800만 개의 호접란이 죽어간다는 것이다. 주로 개업, 집들이 선물용이나 교회의 성전 장식용으로 쓰이는데… 오래 오래 사는 다년생 난이 온실에서 억지로 꽃 피운 상태에서 꽃이 시들면 버려지고 있다. 교회에서 행사용으로 사용한 호접란을 하나씩 정성스럽게 분리해서 교회의 나이든 권사님들이나 새신자들에게 선물로 드리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있다.
전 세계 다양한 난들의 성장 매카니즘을 다소 이해하고 우리의 난들을 보면 한 결 자유롭다. 어떤 그릇에 담아야 하는지, 물을 어떻게 관리해야 하는지, 햇살은 어떻게 해 주어야 하는지… 가정과 사람도 마찬가지다. 가정의 원리, 남자와 여자, 아이들의 성장에 대한 보편적 원리에 지식을 깊이 가지면 한 사람, 한 상황에 대해서 보다 자유롭게 다가갈 수 있다.
하나님은 부모의 희생에 아름다움을 부여하셨다.
난을 기르는 과정이 다른 식물을 키우는 것과 다른 점은 잎, 뿌리, 꽃이 자라고 서로가 서로를 위하는 과정을 고스란히 한꺼번에 볼 수 있다는 점이다. 땅에서 자라는 식물은 뿌리를 관찰할 기회가 없다. 대부분의 난은 뿌리가 노출되어서 나무나 돌에 붙어서 자란다. 난은 매 순간 전략적 선택을 한다. 뿌리를 낼 지, 잎을 한 장 더 낼 지 아니면 꽃을 피울 때인지…
작년 12월에 꽃망울이 맺혀서 4월까지 꽃이 피어 있던 카틀레야 하나가 있었다. 꽃이 그다지 오래가지 않는 종류의 난인데 이 꽃은 수개월 동안 피어 있어서 나에게 말할 수 없는 위로를 주었다. 꽃대가 올라오고 꽃이 피어 있는 기간에는 카틀레야 등의 난은 뿌리와 잎의 성장이 정지된다. 일 년의 1/3의 기간을 꽃 한 송이를 피우는데 모든 에너지를 쏟는다. 꽃이 지고 난 이후에 카틀레야는 뿌리성장과 새로운 잎을 내는 일을 다시 시작한다.
난이 꽃을 피우는 기간에 보이는 집중력과 희생은 인생의 상당한 기간을 자녀양육을 위해서 노력하는 부모들의 헌신을 보는 듯하다. 다음세대를 키우는 일은 가정 단위에서나 사회적으로 많은 헌신을 요구한다. 가벼운 부름이 아니다. 이 희생의 산물인 꽃은 다음세대로의 연결을 향한 부모의 강한 의지를 대변하는 것 같다. 하나님은 이 부모들의 행위에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꽃으로 메시지를 보내시는 것 같다. 꽃은 모성의 아름다움을 떠올리게 한다. 어버이날 꽃을 선물하는 것은 마땅하다.
하나님은 부모됨이 얼마나 큰 짐인지 아신다. 그 짐과 멍에에 가장 큰 아름다움과 다양한 상상력을 심어 두신 것은 우리에게 부모됨은 ‘아름답고 선한 멍에’라는 이야기를 전달하시는 뜻이 아닐까?
난은 지혜롭고 강하다. 자기를 아낀다.
난은 에너지를 만들고 배분하는데 지혜롭다. 난을 포함한 대부분의 식물은 효과적인 설탕공장이다. 물, 햇빛, 공기만 가지고 포도당을 만든다. 물(H2O)에 있는 수소와 산소는 공기 중의 탄소(C)를 광합성 작용을 통해서 포도당(C6H12O6)으로 만든다. 이렇게 만들어진 포도당을 수크로스(sucrose. 설탕)와 녹말로 변화시켜서 다양한 양분을 만들어 식물의 모든 개체에 공급한다. 가끔 새벽에 베란더에 나가서 난 잎을 보면 작은 이슬방울 같은 것이 맺혀 있다. 호기심에 맛을 보았는데 달달해서 놀랐다. 사실은 남은 양분을 바깥으로 밀어내는 것이다.
매일 매일 난들은 생산활동을 하지만 비수기(?)를 대비해서 에너지를 저축한다. 호접란은 두터운 잎에, 카틀레야는 잎, 라이좀, 그리고 벌브에 나누어 저장한다. 덴드로비움은 대나무처럼 생긴 긴 줄기에 물과 양분을 담아둔다. 카틀레야의 경우는 3-4개월 물을 주지 않아도 살 수 있는 저장력을 가지고 있다. 카틀레야가 유럽에 알려진 것은 신대륙 개척시였다. 아마존의 희귀한 식물과 유물들을 유럽으로 보내는 과정에 카틀레야의 강한 입을 오늘날의 뽁뽁이 같이 완충제로 사용했다. 배로 남미에서 유럽으로 가는 몇 개월의 과정에 화물상자에 완충제로 사용되던 것들이 우연히 식물을 사랑하는 ‘카틀레야 경’의 눈에 띄어서 관리를 받다가 너무도 화려한 꽃을 피웠다. 카틀레야 경은 이 식물에 자신의 이름을 붙었고 카틀레야는 유럽을 흥분시켰다. 튜울립 다음으로 식물 투기가 일어났던 것이 카틀레야라고 한다. 그 만큼 카틀레야는 에너지 저장에 강하다.
이렇게 생산되고 축적된 에너지는 더 안정된 자신의 성장을 위한 투자(뿌리를 내는 것과 새 잎을 자라게 하는 것)와 다음세대를 위한 투자(꽃을 피우는 행위) 사이에서 지혜로운 전략적 선택을 한다.
식물이 초록인 것은 햇빛을 가장 잘 받아들이는 엽록소의 특징 때문이다. 꽃이 화려한 색을 가진 것은 초록색 잎의 보색이어야 나비들의 눈에 잘 띄기 때문이다. 꽃은 향이나 색으로 수정을 돕는 매개체를 끌어들인다. 적정한 에너지로 색을 내거나 향을 내는 것에는 엄청난 에너지가 사용된다. 향이 강한 꽃들은 대체로 색이 강하지 않다. 에너지를 절약하는 메커니즘이다. 낮에 활동하는 나비들을 겨냥한 꽃이 아니라 밤에 활동하는 나방들을 겨냥한 꽃들은 대체로 흰색이 많다. 집에 브라사볼라라는 남미의 난이 있다. 이 녀석이 재미 있는 것은 밤에만 향기를 뿜는 다는 것이다. 밤에 활동하는 특정한 나방을 겨냥한 것이다. 낮에 뿜는 향기는 이 녀석에게는 낭비이기 때문이다.
난의 적응력은 난이 상처를 입거나 병충해를 당할 때 나타난다. 놀라운 적응력을 가지고 있다. 호접란의 경우 뿌리가 완전히 망가진 상태에서 회복하는 과정을 보면 놀랍다. 잎이 뿌리의 도움을 전혀 받지 못하는 과정에서 자신이 쪼글쪼글해지면서 뿌리를 내도록 돕고 기다린다. 마침내 뿌리가 나오고 수분을 원활하게 공급하게 되면 쪼글쪼글해졌던 잎이 다시 생기를 얻는다. 호접란의 경우에는 뿌리와 잎이 서로를 도우면서 자란다. 잎이 적어도 3 장이 온전히 자라서 에너지가 축적되면 3 장의 잎장 아래에서 꽃대가 올라온다.
부모는 지혜로워야 한다. 자신이 기쁨과 안식 가운데 있어야 자녀를 도울 수 있다. 자신을 지켜야 자녀들에게도 평안을 전할 수 있다. 하나님 안에서 나의 부름과 나의 유업에 대한 깊은 성찰과 누림은 자녀와 주변을 돌아보는 힘의 원천이 된다. 내가 하나님 안에서 충일해지는 것이 모든 것의 근본이다.
인생은 나이가 들어도 새롭다.
카틀레야, 온시디움, 렐리아, 엔시클리아 등의 남미의 난들을 보면 시간의 흐름이 고스란히 보인다. 호접란처럼 하나의 줄기에서 잎이 계속해서 자라는 종류가 있는 반면 덩굴줄기같은 라이좀이 길게 자라면서 마디마디에서 벌브와 잎이 생기는 종류가 있다. 카틀레야가 대표적이다. 카틀레야를 보면 나이를 짐작할 수 있다. 1년에 겨우 하나의 잎이 자라기 때문이다. 자라는 방향에서 새롭게 나오는 잎을 신아라고 부른다. 꽃은 신아에서만 핀다. 과거에 자라고 꽃을 피웠던 벌브와 잎에서 다시 꽃이 나오는 경우는 없다. 이들은 계속 신아에게 에너지를 보내준다. 기다란 기차, 긴 파이프 같은 모양을 하고 있다. 뿌리 성장도 신아 주변이 가장 활발하다. 이렇게 신아에 에너지를 몰아주는 오래된 벌브가 많은 난은 세력이 크고 안정된 난이다. 마치 뿌리 깊은 나무와 같다. 이 모습을 보고 있으면 역사의 숭고함 같은 느낌을 받는다.
최근에 알게 된 것이 있다. 모든 라이좀의 마디에 사실은 잎을 두 개 올릴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데 하나만 잎을 올리고 나머지 하나는 ‘가능성’의 차원만 가지고 발현시키지 않는다는 것이다. 에너지의 집중이다. 그런데 만약 어떤 일이 있어서 라이좀이 중간에서 뚝 끊어지는 일이 발생할 수 있다. 나무가 부러지거나 거대한 앵무새가 라이좀을 끊어버리는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면 놀라운 일이 벌어진다. 오래된 라이좀에서 발현되지 않았던 ‘가능성’이 새로운 신선한 신아를 만들어낸다. 다시 새 생명이 된 것이다. 이러면서 카틀레야는 두 개의 개체로 분화된다.
그러나 다음세대를 위해서 희생한다. 노년의 아름다움 노년의 역동성은 다음세대를 위한 희생과 나눔에 그 비밀이 있다. 나이듦은 나눔의 미학을 배워가는 과정이다. 그러나 노년의 삶 속에 오롯한 아름다움의 본질은 그대로 있다. 내 속에 새로움을 품지 않으면 안 된다. 피터 드러커라는 걸출한 경영사상가와 전략가에게 그의 말년에 “당신의 수많은 책 중에서 가장 위대한 책을 꼽는다면 무엇입니까?”라고 물었다. 그랬더니 피터 드러커는 “앞으로 쓸 책입니다”라고 대답했다. 그는 베르디는 가장 힘 있는 오페라를 가장 노년에 작곡했다고 강조했다. 노년으로 가는 것은 내 속에 아름다움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그 아름다움을 다음세대를 통해서 발현하는 지혜를 배우는 과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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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의 힘 = 관리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