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꽃에는 ‘가정의 힘’이 있다. 최영우 대표(가정의 힘 교육위원) 3년 전부터 갑자기 난에 빠지기 시작했다. 남미, 동남아, 한국, 중국 등의 대표적인 난을 조금씩 모아서 기르기 시작했다. 지금 베란더에는 50여개 종류의 난이 있다. 고가의 희귀난들은 나에게 맞지도 않고 원하지도 않아서 1,2만원 대 비싸야 3-4만원대의 난들로 갖추었다. 3년의 실험과 조정을 한 끝에 365일 집에 항상 난 꽃이 필 수 있도록 관리할 수 있었다. 처음에는 그냥 신기하고 예뻐서 좋아했다. 시간이 가면서 가끔씩 난이 하는 짓(?)이 내게 삶과 가정에 대해서 다양한 생각거리를 던져주었다. 이 이야기들 중 몇 가지를 나눈다. 다양성과 차이에 대해서 존중하는 법을 배운다. 전 세계에서 꽃 피는 식물의 약 1/4이 난(orchid)이다. 정확하지는 않지만 약 2 만 종의 난이 있다고 한다. 그 중 90%는 흙에서 자라지 않고 나무나 돌에 붙어서 자라는 착생란이다. 우리가 양난이라고 부르는 호접란(phalaenopsis)은 사실 동남아시아(특히 필리핀 등)가 원산지이다. 서양사람들이 상업화에 성공해서 양난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난의 태반은 아시아와 중남미가 원산지다. 원예적으로 상업화
배준완 목사(일원동 교회) 1. 최근 한 선배 목사님과 대화를 하다 이런 질문을 받았다. “목사님, 교회가 먼저입니까, 가정이 먼저입니까?” 쉽지 않은 질문이었다. 대답을 목구멍으로 삼키고 “목사님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하고 여쭤보았다. “순서로 하면 가정이 먼저지요. 하지만 교회는 하나님께서 태초 이전부터 계획하신 구원과 회복 프로젝트의 핵심 기관이 아닙니까. 그렇게 보면, 선뜻 가정이 먼저라고 할 수도 없을 거 같습니다.” 나 역시 동의했다. 창조의 순서는 분명 가정이 먼저다. 그러나 우리는 죄로 망가진 세상을 살고 있고, 가정 역시 죄의 파괴력에서 자유롭지 않다. 아니, 사실 죄의 영향력과 파괴력이 가장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곳이 가정이다. 인류 최초의 살인이 어디서 일어났는가? 가정 안에서 형제간에 일어난 비극이었다. 가브리엘은 세례요한의 탄생을 사가랴에게 예고하면서 ‘그가 엘리야의 심령과 능력으로 주 앞에 먼저 와서 아버지의 마음을 자식에게 돌아오게’ 할 것이라 했다(눅1:17). 바로, 아버지의 마음이 자식에게 향하는 지극히 당연한 순리조차 무너진 시대에 주님이 오셨다는 의미이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가정은 인간이라는 조건의 시작이지만, 우리가
정갑신 목사 (예수향남교회) 창탕족은 히말라야 5천 고지 창탕고원에서 생활합니다. 양과 야크와 말은 이들의 가족이고 동시에 생명의 자원입니다. 이들은 가축 가족의 살을 먹고 피를 마심으로 생명을 이어갑니다. 그리하여 가축 가족을 도살할 때, 마음 깊은 경의를 표합니다. 가축 가족의 살과 피를 통해 상호 연합이 지속하길 기대합니다. 이런 <내어줌과 생명의 고리>가 우리를 일깨웁니다. 누군가가 자기를 내어줌으로 다른 가족들이 살아 생명을 이어가는 일은 우리 일상에서도 한결같이 경험할 수 있는 현상입니다. 이와 더불어 창탕족의 일상에는, 의미 깊은 통과의례가 있습니다. 가축 가족에게 자유를 줌으로 다른 가족들의 기쁨과 복을 기념하고 기원하는 의식입니다. 수백 리 먼 곳으로 시집간 딸이 출산 후, 갓 난 아가와 함께 친정을 방문합니다. 인적 드문 곳에서 생존을 위한 고된 노동과 씨름하는 날 중 드물게 만나는, 참 반가운 시간입니다. 이때 가장은 방문한 딸에 대한 기쁨을 기념하기 위해 또, 갓 태어난 손주의 미래를 축복하기 위해 양 두 마리를 선택합니다. 양의 뿔에 작은 쇠톱을 이용해, 누구나 알아볼 수 있는 표식을 새깁니다. 영원히 매매하지 않겠다는 서약
이윤석 목사(독수리기독학교 연구소장) 요즘 우리 사회에서는 ‘가장’이라는 말을 들을 수 있는 경우가 그렇게 많지 않다. ‘가장’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것 자체가 남녀평등을 지향하는 현대 사회에는 맞지 않는, 고리타분한 유교적 산물이라고 느껴지기도 한다. 기껏해야 부모가 없거나 부모가 있더라도 실제적인 돌봄을 주지 못하는 상황이라 아이들이 어른 역할을 감당해야 하는 ‘소년 소녀 가장’을 언급할 때에나 사용되는 것 같다. 하지만 성경은 가장을 남편과 아내 중 누구라도 능력 있는 사람, 주도적인 사람이 맡는 것이라 하지 않는다. 가정은 세상과 사람이 처음 존재하기 시작한 때로부터 하나님에 의해 세워진 독특한 기관이다. 가정은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기관 중에 가장 오래된 것으로 가정 자체의 고유한 질서와 원리를 가지고 있다. 가정은 결혼한 남자와 여자, 즉 남편과 아내를 중심으로, 그리고 그들의 자녀들로 형성된다. 남편, 아내, 자녀들로 구성되는 가정에는 하나님이 남편을 리더로 세우셨다. 남편이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자기 역할을 잘 감당하고 아내와 자녀들이 가장인 남편과 아버지를 인정하고 잘 도우면 그 가정은 순기능적인 가정이 된다. 반대로 남편의 능력이 자기보다
정갑신 목사(예수향남교회) 막연히 이름만 들었던 분에게 마음이 크게 끌린 것은 1986년이었습니다. 다니던 학교 도서관에서 우연한 기회에, 그가 거의 홀로 책임지고 만들었던 <성서조선>을 조금씩 꺼내 보면서였습니다. 이 학교에 <성서조선>이 다 있었구나... 하는 감탄으로 시작된 독서였습니다. 그리하여 <김교신, 신앙의 반 사각화에 관하여>라는 작은 아티클을 적어 후배들이 만드는 논문집에 기고하기도 했었습니다. 이제 거의 35년을 지나, <자-신학화 포럼>이라는 모임에 참여하면서 다시 그를 만나는 중, 이번에는 그의 일기만 따로 모은 책을 통해 그의 삶과 마음을 들여다보는 즐거움을 누렸습니다. 그리고, 그의 일기 중 두 세 날이 마음에 남다른 느낌이나 생각으로 남았습니다. 그가 그런 날들 사이를 지나며 살았다는 게 기쁩니다. 내가 어디에 있고 또 있고자 하는지.. 그리하여 어디로 향할 때 어떻게 행할 수 있겠는지를 생각하게 하는 고마운 분의, 삶의 속살이었습니다. 1938년 10월 2일(일요일) 비 날 밝기 전 청량리역으로 향하다. 귀경하시는 모친님을 맞기 위하여. 역에서 입장권 파는 이가 불친절하고 불성실하여 말다
가정을 세우는 마인드 셋 (주)도움과나눔 최영우 대표 2009년 말콤 글래드웰이 <아웃라이어>라는 책에서 ‘일만 시간의 법칙’을 주장해 전 세계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특정 분야에 하루 3시간씩 일주일에 20시간을 잡고 10년을 연습하면 그 분야의 전문가가 된다는 이야기다. 절반은 맞고, 절반은 틀린 말이다. 일만 시간의 법칙이 맞았다면 모든 가장은 가정 생활의 전문가가 되어야 한다. 현실은 우리 모두가 아는 바와 같이 전혀 그렇지 않다. 일만 시간의 법칙에 많은 비판이 제기되었고, 노력을 통해 탁월해지기 위해서 아래에 소개할 두 가지 요소가 꼭 필요하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점점 동의하는 이들이 많아지고 있다. 40년간 이 분야를 연구한 스탠퍼드 대학의 심리학과 교수 캐럴 드웩의 책 [마인드셋(Mindset)]은 편견을 깬다. 그는 마인드 셋을 성장형, 고정형으로 분류한다. 성장형 마인드 셋을 가진 사람은 삶이 변화할 수 있다고 믿는다. 고정형 마인드 셋을 가진 사람은 변화가 재능에 의해 결정된다고 생각한다. 이들의 차이를 엄청난 통찰을 가지고 설명하고 있다. 긍정적 변화는 다음과 같은 조건이 만족할 때 이루어진다고 주장한다. 타당한 이야기다. 1
(주)도움과나눔 최영우대표. 가정의힘 교육위원 1960년대 초 부모님은 경남 의령에서 결혼하고 나를 낳고 난 이후 바로 부산에 정착했다. 그야말로 숟가락 하나 들고 감행한 이농이었다. 팍팍한 살림에 둘째 아들이 태어나자 어머니는 큰 아들인 나를 외가가 있던 의령군 백암으로 보냈다. 3-4살에서 초등학교 입학 때까지 외할머니와 이모들 곁에서 자랐다. 나이 어린 이모들이 장난이 심했다. 외할아버지의 담배대를 꼬마에게 빨게 했다. 어른들이 동네에 하나밖에 없는 점방(구멍가계)에서 사준 눈깔사탕을 이모가 약탈(?)하려고 해서 내가 집어 던졌던 기억이 난다. 대청마루로 데굴데굴 굴러가는 눈깔사탕.. 큰 사랑을 받았다. 또래 동네 아이들과 함께 머리에 부스럼이 심해져서 마을에서 집단으로 5일장에서 사서 발라준 피부약이 군데군데 흰머리를 만든 것은 할머니의 아픔이었다. 나는 학창시절 내내 흰머리가 부끄러웠다. 나는 초등학교 내내 외할머니가 보내 준 검정깨를 먹어야 했다. 할머니는 그 때문에 평생 나를 위해 기도하셨다. 마침 그 동네에 외가 사랑방에서 시작한 작은 교회가 활발한 상태였고 외할머니는 나를 업고 교회를 다니셨다. 할머니 등, 교회 가는 밤길의 정자나무, 교회
배준완 목사(일원동 교회) 기드온과 그의 아들 아비멜렉을 보면, 우리 시대와 다음 세대의 모습이 오버랩되는 듯 합니다. 아버지의 잘못은 그대로 답습하면서, 아버지가 남긴 믿음의 유산은 모조리 쓰레기통에 내다버리는 아들의 모습. 우리 시대와 다음 세대의 일이 아닐까 심히 염려 됩니다. 어쩌다 이스라엘의 ‘큰 용사’였던 기드온에게서 아비멜렉 같은 자녀세대가 나왔을까요? 우리는 이 일을 교훈 삼아 어떻게 지혜롭게 다음 세대를 일으켜 세워야 할까요? 먼저, 우리 세대의 잘못이 다음 세대로 되물림되지 않게 해야 합니다. 아비멜렉은 기드온이 스스로 뿌린 씨앗이 거둔 결살이었습니다. 기드온이 뿌린 악이 무엇이었습니까? 믿음을 넘어선 자기확신입니다. 기드온은 미디안 전쟁에서 300명의 적은 숫자로 대승을 거둔 후 지나친 자신감을 얻었습니다. 그는 미디안 두 왕을 추격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승리를 의심하는 숙곳과 브누엘 사람들에게 잔인한 보복을 합니다. 하나님을 경외한다면 도저히 할 수 없는 일을 버젓이 행한 것입니다. 오늘 우리도 믿음과 자기 확신을 구분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믿음은 자기 한계를 알고 넘지 말아야할 선을 지키지만, 자기 확신은 쉽게
" 모든 기독교 가정은 작은 교회가 되어야 한다 " - 조나단 에드워드 "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가정예배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이것만은 계속 실천해야 한다. " - 에롤 헐스 " 함께 기도하는 가정은 잘하는 것이고, 기도하고 성경을 읽는 가정은 더 잘하는 것이며, 기도하고 읽고, 찬송까지 하는 가정은 가장 잘하는 것이다. - 스펄젼 가정예배, 어떻게 시작할까요? 1. 가정예배 셋팅 : 시간, 장소, 인원 가정예배를 언제, 얼마나 자주해야 할까요? 꼭 정해진 시간은 없습니다. 매일 짧게 5~10분을 드릴 수도 있고, 일주일에 한번 1시간 이상 식사나 다과와 겸하여 비교적 길게 드릴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처음 시작하는 분들은 가능한 짦게 자주(매일) 드리는 것을 권하고 싶습니다. 가정예배가 습관이 되도록 하는데 훨씬 더 효과적이기 때문입니다. 매일 저녁 잠자리에 들기 전에 5~10분 정도가 비교적 온가족이 함께 참여할 수 있는 시간일 것입니다. (또는 다같이 모이는 아침식사, 혹은 저녁 식사 시간도 괜찮습니다.) 장소는 가족이 같이 모이는 거실이나, 식탁, 또는 침대 머리맡도 좋습니다. 다만, 아늑한 분위기가 되도록 주변을 정돈하고, 은은한 조명(또는 초)으
유대인 가장들이 가정예배 때 아내를 축복하는 대표적인 기도는 잠언 31장 말씀입니다. 유대 전통은 31장 전체를 다 암송하는 것이지만, 너무 길어서 힘들다면, 다음의 구절만 사용해도 좋습니다. " 누가 현숙한 여인을 찾아 얻겠느냐 그의 값은 진주보다 더하니라 (잠 31:10) 그의 자식들은 일어나 감사하며 그의 남편은 칭찬하여 말하기를 덕행있는 여자가 많으나 그대는 모든 여자보다 뛰어나다 하느니라 고운 것도 거짓되고 아름다운 것도 헛되나 오직 여호와를 경외하는 여자는 칭찬을 받을 것이라 그 손의 열매가 그에게로 돌아갈 것이요, 그 행한 일로 말미암아 성문에서 칭찬을 받으리라 " (잠31:28-31) 이 기도는 굉장히 파워풀한 기도입니다. 내 아내는 진주보다, 루비보다 귀한 존재이며, 어떤 여자보다 더 뛰어나다 라는 칭찬을 남편에게 끊임없이 들으면서 아내의 자존감과 내면의 힘은 엄청나게 향상됩니다. 또한 자녀들이 일어나 감사하며, 그 손의 수고가 헛되지 않고 풍성한 열매로 돌아올 것이라는 축복은 고된 육아와 가사로 지치고 낙심된 엄마들의 마음에 큰 용기와 희망을 줍니다. 그리고 성문에서 칭찬을 받으리라는 축복은 여성의 역할이한 공동체와 사회 속에서도 얼마나 중
우리는 흔히 주일을 예배의 날, 그리고 안식의 날로 생각합니다. 오늘날에는 안식의 날보다는 교회에서 예배하는 날이라는 의미가 좀 더 보편적인 것 같습니다. 대부분의 열심있는 한국교회 성도들은 주일날이 굉장히 바쁩니다. 아침 일찍 가족들과 함께 예배드리러 가서, 하루종일 교회에서 이런 저런 모임과 봉사활동에 참여하다가 저녁에야 집에 들어옵니다. 그러다보면, 정작 가족은 돌볼 여유가 없는 날이 되고 맙니다. 또 교회에 가서도 가족들이 각자 속한 교육부서, 전도회, 기관 등으로 뿔뿔이 흩어지기 때문에 주일날 가족들과 함께 예배드리기도 어렵고, 얼굴조차 보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물론, 교회는 하나님의 가족이자, 소중한 예배 공동체이며, 교회 봉사와 교회 교육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너무 많은 활동에 파묻혀서 정작 작은 교회이자, 성소요, 하나님 나라의 기초가 되어야 할 가정은 제쳐두고 있는 것이 아닌지, 돌아봐야 합니다. 구약성경을 보면, 안식일은 가족과 공동체와 더불어 쉼을 누리는 날입니다. 물론 성회로 모이는 날이기도 하지만, 방점은 쉼과 (확대)가족에 더 있습니다. 출20:8-11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키라 엿새 동안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