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준완 목사(일원동 교회) 1. 최근 한 선배 목사님과 대화를 하다 이런 질문을 받았다. “목사님, 교회가 먼저입니까, 가정이 먼저입니까?” 쉽지 않은 질문이었다. 대답을 목구멍으로 삼키고 “목사님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하고 여쭤보았다. “순서로 하면 가정이 먼저지요. 하지만 교회는 하나님께서 태초 이전부터 계획하신 구원과 회복 프로젝트의 핵심 기관이 아닙니까. 그렇게 보면, 선뜻 가정이 먼저라고 할 수도 없을 거 같습니다.” 나 역시 동의했다. 창조의 순서는 분명 가정이 먼저다. 그러나 우리는 죄로 망가진 세상을 살고 있고, 가정 역시 죄의 파괴력에서 자유롭지 않다. 아니, 사실 죄의 영향력과 파괴력이 가장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곳이 가정이다. 인류 최초의 살인이 어디서 일어났는가? 가정 안에서 형제간에 일어난 비극이었다. 가브리엘은 세례요한의 탄생을 사가랴에게 예고하면서 ‘그가 엘리야의 심령과 능력으로 주 앞에 먼저 와서 아버지의 마음을 자식에게 돌아오게’ 할 것이라 했다(눅1:17). 바로, 아버지의 마음이 자식에게 향하는 지극히 당연한 순리조차 무너진 시대에 주님이 오셨다는 의미이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가정은 인간이라는 조건의 시작이지만, 우리가
코로나 사태가 장기화되면서 많은 교회들이 예배 외에 다른 모든 교육 프로그램을 잠정적으로 중단한지 오래다. 자연히 다수의 교회들이 주일학교를 중단하거나 온라인 비상대기(?) 상태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 처해있다. 하지만 이 때를 교회교육의 패러다임을 전환할 중요한 기회로 만들어야 한다. 팬데믹 시대의 교회는 더더욱 프로그램 중심에서 가정중심으로, 주일학교 중심에서 부모 중심으로 패러다임 전환을 해야 한다. 사실 코로나가 아니라도 주일학교 중심의 신앙교육이 한계에 부딪힌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이미 미국 교회는 약 15~20년 전부터 이런 논의와 성찰이 심도 있게 이루어졌다. 기독교 가정에서 자라나 중고등부 시절까지 교회의 온갖 청소년 프로그램에 꾸준히 잘 참여했던 아이들이 대학에 들어가면서 신앙을 버리는 경우가 다수라는 통계자료가 이미 상당수 있다(참고, 티모스 폴 존스, <가정사역 패러다임 시프트>, 생명의말씀사). 설령 교회를 다니더라도 그 신앙 행태가 자기만족과 위로만을 추구하는 세속주의적인 모습으로 변해간다. 미국 노틀댐대학의 사회학과 교수인 크리스천 스미스(Christiain Smith)는 Soul Searching
종교개혁 이후, 개신교는 여러 지역에서 기독교 신앙의 핵심을 잘 보존하면서 확산되어 갔습니다. 그 중의 한 곳이 바로 네덜란드인데요. 네덜란드 개혁교회는 유럽에서 뿐만 아니라 네덜란드인들이 대규모로 이주한 남아프리카공화국이나 미국에서도 자기들의 신앙을 잘 유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네덜란드 개혁교회가 어떻게 올바른 기독교 신앙을 이처럼 잘 지켜올 수 있었을까요? 그 결정적인 이유 중 하나가 바로 ‘가정예배’입니다. 이러한 네덜란드 개혁교회의 가정예배를 네덜란드 개혁교회의 목사이며 퓨리탄 리폼드 신학교의 학장인 조엘 비키 목사님을 통해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조엘 비키 목사님의 5남매가 부모님의 결혼 50주년 기념일에 각자 아버지와 어머니에게 그동안 가장 감사했던 것을 한 가지씩 생각해서 부모님께 말씀드리기로 했습니다. 놀랍게도 5남매 모두가 어머니에 대해서는 ‘기도’에 감사한다고 하였고, 아버지에 대해서는 ‘가정예배를 끊이지 않고 인도해 주신 것’에 감사한다고 했답니다. 조엘 비키 목사님의 형님은 이렇게 이야기했다고 합니다. “아버지, 제가 가지고 있는 가장 오래된 기억은 아버지께서 주일 저녁에 천로역정을 읽어주시면서, 성령님께서 어떻게 성도들을 인도해 주시
지형은 박사_ 한국 IFCJ 이사장, 성락성결교회 담임목사 가정예배와 말씀 낭송이 중요하다는 도전을 받고, 교회의 젊은 부부 내외가 10살, 7살 두 아이와 함께 아침저녁으로 가정예배를 드렸습니다. 예배 때마다 신명기 6장 4~9절을(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유일한 여호와이시니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다섯 번씩 낭송해주었습니다. 일주일이 지나자 작은 아이가 입으로 신명기 말씀을 흥얼거리기 시작했습니다. 낭송을 들으면서 말씀이 아이의 마음에 차서 흐른 겁니다. 이것이 구약성경에서 말씀하는 ‘하야’ 곧 말씀 암송 방식입니다. 말씀이 삶이 되는 것입니다. 대를 이어 지속되어야 성경에서 말하는 복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성경에서 말씀하는 복에서 가장 기본적인 몇 가지 요건이 있습니다. 그 중 하나가 대를 이어 계속 된다는 것입니다. 대를 이어 지속되지 않는 것은 성경에서 말씀하는 복이 아닙니다. 시편 128편은 가정 가문의 복을 가르친 말씀입니다. 짧은 이 시편에 복을 받아 누리는 방법과 복의 내용이 나오는데, 복은 평생에 이어지며, 자식의 자식으로 이어집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의 길을 걷
권창규 목사(토브 미션 대표, 좋은가족 교회) 17세기 동안 교회에서 외면당한 주제, 가정! 한국에 “가정의 힘”이란 단체가 설립된 것은 역사적 의의를 갖는다. 기독교 역사 2천년동안 줄곧 외면 받아 온 것이 있다면 “가정”이다. 교단의 입장 따라 다를 수 있지만 큰 이견은 없을 꺼다. 지난 2천년 교회가 얼마나 부흥과 성장 특히 선교적 확장을 이루었는지 우린 알고 있다. ‘교회’, ‘선교’ 이런 주제가 기독교와 교회 메인을 장식했다. 그런데 2020년을 앞둔 상황에서 그와 유사한 주제가 아닌 “가정”이 교회의 화두가 되었다. 요즘 많은 사람의 입에 오르내리는 주제가 ”가정예배’이다. 기독방송국에서 앞 다투어 “가정예배” 또는 “가정”, “가정교육” 등을 다룬다. 필자에게도 취재, 강의, 원고 의뢰가 들어오곤 한다. 기분 좋으면서 씁쓸하다. 2천년 전 초대교회 핵심은 “가정”이었는데 말이다. 성경에 나타난 예루살렘 초대교회를 알려면 유대적 배경에서 가정을 모르고는 이해할 수 없다. 성경 대부분이 작은 땅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하는 이스라엘에서 일어난 일이기 때문이다. 유대교의 근간은 가정이다. 목숨처럼 지키는 안식일과 그 안식일의 중심도 가정이며 가정예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