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갑신 목사(예수향남교회) 생각지 않게 발생한 사건들도 풍랑일 수 있지만, 내 존재를 흔드는 관계들도 맞서기 버거운 풍랑입니다. 그리고 가정은 늘 이런 풍랑들에 시달립니다. 하지만, 풍랑을 어떤 마음과 자세로 이해하고 맞이하느냐에 따라, 그것은 나를 삼킬 수도 있고 단단하게 키울 수도 있다는 걸,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풍랑을 맞이하는 마음과 자세는 내가 하나님을 어떤 분으로 알고 있느냐, 하나님을 과연 어디까지 믿고 있느냐에 따라 현저히 달라집니다. 제자들이 예수님의 권면을 따라, 바다 같은 갈릴리 호수를 건넙니다. 이들 중 다수는 뱃사람 출신이고, 어린 시절부터 갈릴리에 익숙합니다. 하지만 불현 듯 만난 이번 풍랑은 좀 비상하였습니다. 과거에 경험해보지 못한 위력을 지녔거나, 과거의 경험에 의하면 사람을 죽일 게 분명한 풍랑이었습니다. 제자들은 당황했습니다. 그리고 할 수 있는 모든 조치가 소용없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그 때 비로소, 예수님이 주무시고 계시다는 걸 알게 됩니다. 얼마나 황당하고 짜증스러웠을까요? 그들은 예수님을 격하게 깨웁니다. 그리고, 일어나신 예수님은 즉시 풍랑을 잠잠케 하십니다. 그 때, 제자들의 고백은 이것이었습니다
보이는 하나님(?!)으로 세우신 부모를 공경하라 이윤석 목사 (독수리기독학교 연구소장) 부모 공경 계명의 독특성 모세가 시내산에서 하나님께 받은 십계명은 신자들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잘 알려줍니다. 십계명 중에서 1~4번째 계명은 하나님에 대한 것이고, 6~10번째 계명은 다른 사람들에 대한 것입니다. 그런데 다섯 번째 계명인 이 부모 공경의 계명은 하나님에 대한 계명들과 사람에 대한 계명들 사이에 있으면서 부모와 자녀라는 독특한 관계를 이용하여 사람과 사람의 관계뿐 아니라 사람과 하나님의 관계에 대한 교훈도 준다는 점에서 특이합니다. 하나님은 부모에게 자녀를 양육하고 교육하여 독립적인 가정을 이룰 수 있도록 준비시키는 일을 맡기셨습니다. 이 과정에서 부모는 어린 자녀들에게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대신하여 보이는 하나님의 역할을 하면서 자녀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법을 배우도록 해야 합니다. 자녀에게 부모는 그냥 수평적 관계에 있는 동료 인간이 아닙니다. 자녀가 성인이 될 때까지 부모는 자녀에게 하나님을 대리하는 역할을 하는 존재입니다. 부모 공경에 따르는 약속 부모를 공경하는 자녀는 특별한 복을 받습니다. 신명기 5장 16절은 “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명
최근 목회데이터연구소(안산제일교회, 한국교회연구원)의 조사에 따르면 코로나19 이후 크리스천 청소년 신앙생활에 아버지가 미치는 영향이 이전보다 증가했다고 합니다. 코로나로 인해 아버지들이 가정에 머무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이런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보입니다. 평소에는 바빠서 자녀들의 신앙 교육에 시간을 내지 못하던 아버지들이 코로나로 인해 가정에 머무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자연스럽게 자녀들의 신앙과 일상생활이 현재 어떤 상태인지를 조금 더 잘 보게 되고, 평소보다 더 많은 개입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자녀들도 아버지가 가정에 머무는 시간이 더 많아지면 자연히 아버지의 존재감을 더 느끼게 되고, 아버지와의 상호작용이 더 많아지게 됩니다. 더구나 코로나로 인해 교회교육의 영향력이 온라인 위주로 축소되고 있는 상황 속에서 자녀들의 신앙 교육에서 아버지를 포함한 가정 전체의 영향력이 더 커진 것으로 보입니다. 그렇다면, 아버지가 신앙교육의 책임자로서 자녀들에게 좋은 영향을 끼치기 위해서는 어떤 실천이 필요할까요? 먼저, 코로나와 상관없이 아버지들이 가정의 영적 책임자로서 자신의 역할을 분명히 인지하고, 아버지의 자리를 잘 지키시는 것이 중요합니다. 제사장으로서 자
아이를 잘 키운다는 건 ? 동네 놀이터에서 만나는 우리 막내 또래의 아이들을 보면 대부분 맞벌이 가정에, 할머니나 도우미 이모님의 돌봄을 받고 있다. 하지만 일하는 엄마들이든, 전업주부이든, 자녀 교육을 위해 어린 나이부터 최선을 다하는 건 다르지 않다. 주말마다 발품을 팔고 다니며 좋다는 학원 정보를 알아내느라 바쁘고, 좋다는 건 다 시킨다. 다들 안쓰러울 정도로 열심히, 온갖 노력을 자녀를 위해서라면 아끼지 않는다. 도대체 어떤 교육 목표를 가지고 있기에 저런 수고를 아끼지 않을까 문득 궁금했다. 적어도 아이를 노벨상 수상자나 세계적인 인물로 키우고 싶은 열망이 있는 줄 알았다. 그러나 동네 엄마들과 대화하면서 뜻밖의 대답을 많이 들었다. 아이가 탁월하기를 바란다기보다, 그냥 중간만 가더라도 평범하고 행복했으면 좋겠다는 거였다. 평범? 행복? 중간? 너무 막연하고 소박한 거 아닌가. 부모들이 엄청난 시간과 돈과 노력을 자녀 교육에 들이는 데 비해, 목표가 의외로 뚜렷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녀 교육을 잘 시킨다는 게 뭘까? 이 질문 앞에서 대부분의 부모들은 막연하다. 그래서 ‘남들 하는 만큼’이 기준이 되고, ‘옆집 엄마’나 육아 인플루언서가 쉽게
배준완 목사 (일원동교회) 언젠가 EBS 교육 방송에서 소개된 내용이다. 한 초등학교 국어 교사가 학년 전체에 고전 읽기 프로그램을 꾸준히 실시했더니 아이들이 현저하게 욕이 줄고, 교사나 급우들과 관계도 좋아지고, 어휘력과 이해력을 비롯해 전반적 국어 성적이 많이 향상되었다고 한다. 학교의 고전 읽기 운동이 가정에까지 확장되어, 온 가족이 모여 고전을 읽고 서로 소감을 나누는 것으로 가족 간의 유대를 쌓고 인성교육을 실천한 사례들도 있었다. 그런 가정의 자녀들은 문해력과 주도성, 삶을 대하는 자세가 훨씬 성숙하다는 공통점을 보였다. 부모라면 혹 할(?) 내용이다. 그 아이들이 읽는 고전은 논어, 공자, 플라톤, 톨스토이, 탈무드 같은 동서양의 고전들이었는데, 그중에는 고전 중의 고전인 성경도 (어린이용이긴 했지만) 포함되어 있었다. 고전이란 세월이 흘러도 그 가치나 무게가 변하지 않는, 세월의 검증을 거친 책들을 말한다. 그런 의미에서 성경은 분명 현존하는 최고의 고전이다. 서구 문명의 토대가 된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보다 모세와 구약 선지자들의 글이 훨씬 더 앞선다. 성경은 지금까지도 전 세계적으로 가장 많이 팔리고 읽히며 여전히 수많은 사람들에게 새로운
서지현 사모 (가정의 힘 교육위원) 어느 결혼식 피로연 자리에서 하객으로 참여한 젊은 부부의 하소연을 들었다. 부인의 불만은 ‘결혼 전이나 신혼 때는 그렇게 스윗하고 자상하던 남편이 아이를 낳고 나니 왜 이렇게 굼뜨고 둔해졌는지 모르겠다’는 거였다. 반면, 남편은 ‘내가 철인이냐, 직장 생활 열심히 하고 집에 와서 육아까지 팔 걷어붙이고 도와주는 게 얼마나 피곤한지 아냐. 둔해진 게 아니라, 피곤해서 몸이 안 움직이는 거다’고 항변하는 거였다. 남편이 답답하다고 느끼는 부인의 입장도 이해가 되지만, 남편도 일과 육아까지 병행하느라 얼마나 힘들지 짐작이 되었다. ‘우리가 보기에 남편은 신혼 때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자상한 남편이다. 단지 센스 있고 판단력 빠른 부인의 눈높이에 조금 못 미치는(?) 것뿐이다. 기대치를 낮추고, 남편에게 감사한 점을 생각해 봐라. 힘들게 일하고 집에 와서 아이 씻기고 놀아주는 일까지 도맡아 주는 남편 어디 가도 찾기 어렵다’고 다들 웃으며 입을 모았다. 우리는 너무 쉽게 감사한 일들을 당연한 것으로 바꿔 버린다. 감사한 것들이 당연한 것으로 바뀌는 순간, 지나친 기대와 욕심이 모든 것을 짜증과 불평으로 몰아간다. 언젠가 남편이 나에
가정을 세우는 마인드 셋 (주)도움과나눔 최영우 대표 2009년 말콤 글래드웰이 <아웃라이어>라는 책에서 ‘일만 시간의 법칙’을 주장해 전 세계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특정 분야에 하루 3시간씩 일주일에 20시간을 잡고 10년을 연습하면 그 분야의 전문가가 된다는 이야기다. 절반은 맞고, 절반은 틀린 말이다. 일만 시간의 법칙이 맞았다면 모든 가장은 가정 생활의 전문가가 되어야 한다. 현실은 우리 모두가 아는 바와 같이 전혀 그렇지 않다. 일만 시간의 법칙에 많은 비판이 제기되었고, 노력을 통해 탁월해지기 위해서 아래에 소개할 두 가지 요소가 꼭 필요하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점점 동의하는 이들이 많아지고 있다. 40년간 이 분야를 연구한 스탠퍼드 대학의 심리학과 교수 캐럴 드웩의 책 [마인드셋(Mindset)]은 편견을 깬다. 그는 마인드 셋을 성장형, 고정형으로 분류한다. 성장형 마인드 셋을 가진 사람은 삶이 변화할 수 있다고 믿는다. 고정형 마인드 셋을 가진 사람은 변화가 재능에 의해 결정된다고 생각한다. 이들의 차이를 엄청난 통찰을 가지고 설명하고 있다. 긍정적 변화는 다음과 같은 조건이 만족할 때 이루어진다고 주장한다. 타당한 이야기다. 1
배준완 목사(일원동 교회) 기드온과 그의 아들 아비멜렉을 보면, 우리 시대와 다음 세대의 모습이 오버랩되는 듯 합니다. 아버지의 잘못은 그대로 답습하면서, 아버지가 남긴 믿음의 유산은 모조리 쓰레기통에 내다버리는 아들의 모습. 우리 시대와 다음 세대의 일이 아닐까 심히 염려 됩니다. 어쩌다 이스라엘의 ‘큰 용사’였던 기드온에게서 아비멜렉 같은 자녀세대가 나왔을까요? 우리는 이 일을 교훈 삼아 어떻게 지혜롭게 다음 세대를 일으켜 세워야 할까요? 먼저, 우리 세대의 잘못이 다음 세대로 되물림되지 않게 해야 합니다. 아비멜렉은 기드온이 스스로 뿌린 씨앗이 거둔 결살이었습니다. 기드온이 뿌린 악이 무엇이었습니까? 믿음을 넘어선 자기확신입니다. 기드온은 미디안 전쟁에서 300명의 적은 숫자로 대승을 거둔 후 지나친 자신감을 얻었습니다. 그는 미디안 두 왕을 추격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승리를 의심하는 숙곳과 브누엘 사람들에게 잔인한 보복을 합니다. 하나님을 경외한다면 도저히 할 수 없는 일을 버젓이 행한 것입니다. 오늘 우리도 믿음과 자기 확신을 구분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믿음은 자기 한계를 알고 넘지 말아야할 선을 지키지만, 자기 확신은 쉽게
헬리콥터 부모는 자녀 주위를 맴돌면서 자녀의 작은 필요에도 민감하게 반응하고, 일거수일투족 세심하게 신경 쓰는 헌신적인 부모다. 과연 그런 부모의 극진한 보호를 성인이 된 자녀들이 어떻게 생각할까? 그런 양육법에 감사를 표현할까? 미국 뉴스 웹사이트인 레딧에 올라간 이 질문에 2천개가 넘는 답글이 달렸다고 한다. 많은 이들이 호소한 것은 감사가 아니라 고통과 답답함이었다. 지속적인 악영향 많은 이들이 성인이 되어서도 부정적인 영향을 끼친다고 응답했다. “저는 제가 다른 사람에 의해 움직이고, 조종되는 것 같은 느낌이 싫어요” “저는 제가 무슨 일을 하든지, 심지어는 일상생활 속에서도 제가 감시당하고, 관찰 받는다는 느낌이 싫어요.” “제가 어떤 직업을 갖고 일하든지, 저는 제가 무언가를 망쳐서 사람들에게 실망을 주지 않을까 계속 두려움을 느껴요. 저는 솔직히 말하면, 마비된 것 같아요” “저는 자라오면서, 저의 사생활이 존재하지 않는 게 정상적인 삶이라고 생각했어요” “불안하고, 숨이 막힐 것 같아요. 헬리콥터 부모들은 자녀들에게 비정상적인 기대를 가지고 있고, 그들의 자녀들은 이미 성인이라는 것을 받아들이길 거부해요.” “저는 집에서 나온 지 수년이 지났지
코로나 상황이 급속히 악화되면서 교회의 공예배가 다시 온라인(가정예배)로 전환되었습니다. 그만큼 가정에서의 예배가 더욱 중요해졌습니다. 부모의 제사장 역할과 가정이 성소로 회복되는 일이 더욱 신속히 진행되어야 한다는 뜻 같기도 합니다. 이 기회에 부모님들이 예배에 대한 성경적 이해를 분명히 한다면, 가정에서의 예배가 더욱 든든히 세워질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배의 핵심을 목사님의 설교를 듣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예배를 이렇게 수동적 청취 행위로만 보면 사실 현장에서 드리는 대면예배나 온라인 비대면예배가 큰 차이가 없습니다. 그러나 예배는 예배자의 적극적인 참여를 동반하며, 그 참여는 방향성을 가집니다. 예배학자 로버트 웨버는 ‘예배는 동사다 Worship is a verb‘라는 말로 이를 표현했습니다. 먼저, 예배에는 수직적인 방향성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로 내려오시고, 우리가 하나님을 향해 올라가는 쌍방향 소통이 바로 예배입니다. 하나님이 예배 가운데 약속과 구원의 말씀, 성찬과 축복의 말씀으로 찾아오십니다. 우리는 그에 대한 응답으로 믿음의 고백과 찬양과 감사와 송영과 기도 가운데 하나님께로 올라갑니다. 시편 기자들은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